나를 기억해줘. 너를 기억할게.
악수를 하는 이유.
코로나 19가 여전히 기승이다. 아직도 가까운 이들이 일주일간 격리가 되기도 한다. 자주 찾아보던 이웃 작가님도 코로나에 걸리셨다. 접촉이 곧 감염이라는 공식이 여전하다. 모든 접촉은 죄악시되고 있다.
코로나 19가 없던 시절 나는 악수를 꼭 했다. 처음 만날 때나, 이야기가 끝나고 헤어질 때. 둘 중 하나에는 꼭 악수를 했다. 사람에 따라 반응이 꽤나 다르다. 어떤 분은 웃으며 기꺼이 맞아 주시고, 또 어떤 분은 꽤나 당황해하며, 머뭇 거리다 악수를 한다.
그래도 나는 손을 쭉 뻗어 악수를 청한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코로나 19가 끝나면 나는 다시 악수를 하고 싶다. 악수는 공간을 공유하고, 시간과 온도를 나누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를 기억해줘. 너를 기억할게.
악수의 시작은 분명하지 않다. 고대 바빌론이 시작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신성한 힘이 깃들어 있는 통치자의 손으로 힘을 전했다는 이야기. 또, 악수는 손에 무기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방법에서 내려왔다고도 한다. 어찌 되었건, 악수는 사람 사이 접촉을 하는 일이다.
나에게 악수는 '기억'이다. 손이라는 피부를 직접 맞대는 일이다. 손이 따뜻한 사람이 차가운 사람에게 온도를 전할 수도 있고, 손이 차가운 이들이 손을 맞잡아 온도를 올 릴 수도 있다. 서로의 접촉으로 온도를 나누는 기회가 된다.
신성한 힘 까지는 아니더라도, 온도를 전할 수 있는 기회. 악수를 하는 순간 공간과 시간을 공유했다는 기억. 서로 이 순간을 기억하고, 서로를 기억하자는 표시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만나는 사람과 꼭 악수를 한다.
악수를 하면 마음으로 되뇐다.
'나를 기억해줘. 너를 기억할게'
한 줄 요약: 악수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온도를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