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씁니다.
좋은 글감은 없다. 좋은 글쓰기만 있다?
아는 사람이 재즈 밴드에 트롬본 연주자다. 최근에 초대받아 공연에 갔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놀랐고, 프로는 프로라는 생각이 든다.
재즈는 무엇일까? 무척 어려운 질문이다. 백과사전에 있는 내용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9세기 후반 미국 동부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이에서 만들어진 음악. 즉흥적이고 다양성이 무척 중요한 음악이다.
공연은 1시간 20분 정도 이어졌다. 공연 구성이 좋았다. 재즈가 태동한 1920년대부터 시작해 10년 단위로 시대를 대표하는 곡을 원곡 그대로 들려준다. 시대 설명과 짧은 이야기가 따라온다. 그러고 나서 재해석한 재즈를 들려준다.
설명 가운데 오래도록 남는 문장이 있다.
"재즈에 명곡은 없습니다. 명연주만 있을 뿐입니다."
문장이 공연이 끝나고도 계속 머리를 돌아다녔다. 문장을 잡아 두고는 한참을 보고는 약간 다듬어 글쓰기 서랍에다 넣어 주었다.
"좋은 글감은 없습니다. 좋은 글쓰기만 있을 뿐입니다."
오늘도 씁니다.
글감을 찾아 헤맨다. 겨우 찾은 글감이 작가 서랍에 머문다. 머물다가 글로 성장하지 못하고 오래도록 머문다. 좋은 글감이 짠하고 나타나 멋진 글이 써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커진다. 글감이 없다는 핑계로 글쓰기를 멈추기도 한다. 글감을 찾아 책도 뒤적거리고, 다른 사람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인다.
그래도 없으면, 멍하니 있는다. 좋은 글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면 좋다는 생각이 다시금 커진다. 도둑놈 심보인가 보다.
글쓰기 서랍에 넣어둔 문장과 재즈 지휘자가 알려준 문장을 꺼내 나란히 놓아두고 가만히 본다.
"재즈에 명곡은 없습니다. 명연주만 있을 뿐입니다."
"좋은 글감은 없습니다. 좋은 글쓰기만 있을 뿐입니다."
재즈는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색을 바꿔 입고 나타난다. 같은 연주자라도 시간에 따라 다른 음악이 되어 나타난다. 곡을 글로, 연주자를 글쓴이로 바꾸니 이도 말이 되지 싶다. 같은 글감이라도 글쓴이에 따라 색을 바꿔 입고 나타난다. 같은 글쓴이라도 시간에 따라 같은 글감으로 다른 글을 써낸다.
다시 문장을 보며 곰곰 생각하게 된다. 명연주는 어떻게 나올까? 연주를 해야 알 수 있다. 악보를 본다고 새로운 연주가 나오는 일은 아닐 테니 말이다. 글쓰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자꾸 커진다.
글을 써야 색이 나오고, 연주를 해야 리듬을 알 수 있다. 명연주를 위해서 연주를 해야 하고, 좋은 글쓰기를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한다. 좋은 글감을 찾기만 해서는 글이 나오지 않는다. 써내야 한다. 쓰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이뤄지는 것이 없다. 써야 한다. 일단 쓰고 나면 다듬을 수 있다. 그렇게 멋진 글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좋은 글쓰기는 잘 모르겠으니. 문장을 바꿔야겠다.
"좋은 글감은 없다. 꾸준한 글쓰기만 있을 뿐입니다."
한 줄 요약: 글은 써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