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는 시간, 성장하는 시간, 여유를 가져야 하는 시간.
"성과"
공학 대학원에서는 끊임없이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일정 기간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나면 평가를 받게 되는데, 크게 '정성평가'와 '정량평가'로 나뉜다. 정성평가는 프로젝트 내용, 가치를 질(quality) 중심으로 평가하는 일이다. 프로젝트에 따라 매우 전문적인 분야라면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비전문가인 행정담당자는 평가하기가 더욱 어렵울 것이다.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전공분야를 조금만 벗어나면 알기 어려울 정도로 기술이 고도화되어 있기에 정성평가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그래서 연구 프로젝트 평가에는 정량평가는 필수다. 우선 쉽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논문 **편, 특허 **편, 학회 발표 **회'로 숫자로 표현할 수 있다. 또한 비전문가도 달성의 유무를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논문, 특허, 학회 발표는 업계 전문가들의 평가를 거처야만 하니, 평가의 외주라고 볼 수도 있겠다.
연구 프로젝트가 시작하는 동시에 이 정량평가의 압력을 받게 된다. 특히 논문과 특허 성과는 어렵다. 실험하고 쓰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이른바 peer-review (동료평가)를 받는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본인의 <자네 대학원 생인가?> 매거진에서 이 부분은 자세히 다뤄볼까 한다). 재깍재깍 연구 프로젝트 종료시간은 다가오고 논문과 특허 출판 시간은 늘어지니 깝깝하기 이를 때 없다.
6년간 연구 프로젝트를 하며 '성과'는 무엇일까? 고민을 한 적이 참 많다. 어떤 요소가 작용해 성과를 내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빨리 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쉽게 낼 수 있을까? 같은 고민 말이다.
"O = A × t"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복잡하다. 그러니 하나의 현상이 발생하는 데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작용한다. 복잡하게 보려면 한계가 없다. 자잘한 요소들을 들어내는 작업을 해야 비로소 중요한 요인이 보인다. 여러 고민 끝에 성과를 아래와 같이 표현해봤다.
O (outcome, 성과) = A (ability, 능력) × t (time, 시간)
결과는 능력과 시간이 따라 나온다. 좋은 능력을 가진 사람은 조금의 시간 만으로도 많은 성과를 낼 수 있고, 능력이 변변치 못한 사람은 시간을 많이 들인다고 하더라고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또 좋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면 성과를 내지 못할 수 있고, 나쁜 능력임에도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 목표한 성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 물론 운이라는 요소가 등장해 내가 제시한 식을 부실 수도 있지만, 대개가 제시한 식처럼 흘러가는 듯하다.
내가 처음 논문을 낼 때가 그랬다. 연구 프로젝트 평가 기간은 다가오고 내 논문은 지지부진했기에 조바심에 났다. 하루에 17~18시간을 논문 쓰기와 실험으로 채워 넣었다. 조급함과 불안감이 나를 밀어붙여 시간을 무진장 투자했다. 빈약한 능력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시간을 쏟아부으니 목표한 성과에는 도달했다.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그래도 꽤 괜찮은 저널에 논문이 출판 승인을 받았다.
"A = r × e(t)"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는 항목이 있다. 바로 '능력'이다. 시간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지고,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물론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한다면 다르긴 하지만-시간에 관한 글도 쓰겠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능력' 요인이다.
A (ability, 능력) = r (resone, 이성) × e(t) (experience, 경험)
능력에서 이성은 판단능력, 논리적 사고력으로 정했다. 이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논의는 어려우니 이번 글에서는 그저 판단능력과 논리적 사고력으로 한정해보자. 이성은 논리적인 글을 읽고, 학습을 통해 배양된다. 연구 분야에서는 논문이 되겠다. 논문은 논리적 흐름이 중요하다. 논리적 흐름 끝에 우리는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는 글이 되기 때문이다. 또는 잘 쓰인 글이다. 잘 쓰인 글들은 보통 '기, 승, 전, 결'과 같은 흐름이 존재한다. 그러기에 글을 읽으면 우리의 '이성'이 성장한다.
다음은 경험이다. 우리 모두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나, 서로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군가는 힘든 일을 겪고, 극복하며 높은 밀도의 경험을 축적하기도 한다. 반면 어떤 이는 그저 흘려보내기만 하여 낮은 밀도의 경험을 가져가기도 한다. 밀도가 다른 것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경험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험을 시간에 의존하는 함수로 적어봤다.
능력은 이성과 경험이 함께 있어야 비로소 완성이 된다. 이성만 크다고 해서 출중한 능력이 될 순 없으며, 경험만 많다고 우리는 그 사람을 능력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 두 개가 함께 있어야만 능력은 급격히 커진다.
"견디는 시간, 성장하는 시간, 여유를 가져야 하는 시간"
앞서 말한 첫 논문 작성에서 나는 제한된 시간에 성과를 내기 위하여 단시간에 엄청난 시간을 밀어 넣었다. 그 시간은 성과를 내기 위한 시간이 되기도 했고, 내 능력을 높이는 밀도 높은 경험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당시의 나는 무척 조급하고 불안해 떨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시간은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고, 성장하는 시간이었다.
능력은 단박에 성장하지 않는다. 그러니 성과도 단박에 나오진 않는다. 그렇다면, 그 시간을 조금 여유롭게 했으면 어떨까 한다. 능력에도 성과에도 일정 수준의 시간은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조급해한다고, 불안에 떤다고 해서 시간이 더 들어가지 않으니 말이다. 시간을 들이되 여유롭게 했으면, 고통스러운 시간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모두들 어디에선가 성과의 압박을 받고 있을 것이다.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말이다. 그들에게 모두 말하고 싶다. 그대는 성장 중입니다. 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고 같은 속도로 흐릅니다. 안달복달하고 불안해하며, 조급해한다고 해서 빨리 가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여유를 가지고 시간을 들여봅시다. 시간은 내 능력을 성장시키고 성과는 한 걸음 가까이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