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무대의 시작

최초의 기억

by Starry Garden
주연과 조연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행인 1', '친구 3'으로 이름도 없이 숫자로 매겨지는 단역처럼 스쳐가기도 하고, 몇 년간 함께 일을 하며 지내는 조연처럼 내 삶의 무대를 거쳐가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한평생을 같이 하며 내가 살아내고 있는 삶의 무대를 만들어가는 주연 같은 사람들도 소수지만 몇 명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오가며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바로 우리가 사는 이야기이다.


평일 저녁이 늦도록 아버지를 기다렸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잠이라는 녀석에 진 나는 침대에 들어가 자연스레 이불을 덮었다. 얼마 후 어머니께서 "아버지 내일도 바쁘시단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할지 몰라!"라며 나를 흔들어 깨웠다. 정신을 차리고 나가니 아버지는 이제야 늦은 저녁 식사를 하신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아버지의 저녁 식사가 끝나길 기다렸다.


아버지 이야기를 시작하니, 커다란 무대의 막이 오르고 주연인지, 단역인지, 조연인지 지금은 알 수 없는 이들 마구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잠시 무대에 나왔다, 한참 후에 등장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마치 주연처럼 있다가 연기처럼 사라지기도 하는 무대의 시작이었다.


가족이라는 등장인물


아버지 가계도


<그녀 태어나다!>와 같은 규칙으로 호칭을 정리하고자 한다.


호칭은 주인공인 아버지를 중심으로 적는다.

아버지는 '그'라고 한다.

가계도에는 어머니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외할아버지를 중심으로 형제의 호칭을 적었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누나는 내게 고모가 될 테지만, 가계도에는 아버지를 기준으로 누나 또는 여동생으로 적어놓았다. 아버지를 기준으로 호칭을 적으니 형제가 몇 명인지 헷갈리고 마음에도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관계도에는 간단히 적었다.


그는 1961년 생이다. 4남 3녀 중 여섯째시다. 첫째 누나는 그보다 18살에 많아, 그가 2~3살쯤에 결혼을 했다. 첫째 형은 1946년생으로 그보다 15살이 많았다. 형 2, 형 3은 쌍둥이로 그보다 6살이 많고, 바로 위의 누나는 그보다 3살이 많으며 동생과는 4살 차이다.


이야기를 듣던 중 가장 놀란 건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이였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호적상으로 각각 1915년생, 1917년생이시다. 현대의 굴곡을 온몸으로 맞은 숫자에 나는 놀랐다. 1919년 3월에 전국에 만세 운동이 있었고, 1945년에 광복을 했으며, 1950년에는 전쟁이 일어나 3년간 지속되었다. 그 전쟁은 아직까지 휴전인 상태이다. 다시 한번 놀란 건 호적이 잘못되어 나이가 틀렸다는 것이다. 샛길로 잠시 빠져 그 이야기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생애 최초 기억 이전


나이가 틀려진 이야기는 이렇다. 그가 태어나기도 이전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을 해 정착한 곳은 경상북도 북부 지방의 궁벽한 시골마을이었다. 1950년 6월 25일 그날 새벽은 평온했다고 한다. 산과 절벽이 정보마저 더디게 오게 한 모양이다. 다음날이 돼서야 전쟁의 소식을 듣고는 피난을 가셨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온 마을은 생각 외로(?) 별일이 없었던 모양이다.


다만 읍내에 있던 면사무소가 불타, 공무원이 와서 호구조사를 다시 했다고 한다. 그때, 호적의 나이는 진짜 나이와 분리되어 지금과 같이 되었다고 한다. 그 일대의 모든 이들에 대한 자료를 다시 작성하던 와중에 잘못되었거나, 수기로 작성하던 중 오류가 아닐까 한다. 실제의 나이는 그의 아버지는 1923년생, 그의 어머니는 1925년 생이셨다고 한다.


탄생을 알리는 꿈


그의 어머니는 그를 갖기 전 선명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6월 농번기에 바쁜 하루를 보내던 어머니는 낮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고 하셨다. 그때 꿈을 꾸던 그의 어머니는 알아채셨다고 한다. "태몽이구나" 선명한 그 꿈은 이렇다.


[누런 황소 한 마리가 그 커다란 몸집만큼이나 큰 눈을 껌벅인다. 한참을 바라보던 그 황소는 천천히 어머니에게 다가왔다고 한다. 그리곤 인사를 하듯 머리를 아래로 숙였고 어머니는 숙인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었다고 한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소는 어머니를 모시듯 산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동물마다 가진 이미지가 있다. 호랑이는 사나워 보이고, 뱀은 약삭빠르며, 개는 충직 하리라는 이미지. 우직하게 일하는 소의 이미지가 그의 삶과 겹쳐 보였나 보다. 태몽을 말하던 그의 말 끝에 "소처럼 일하라는 운명이었나 보다."라며 이야기를 마쳤다.


좁디좁은 초가집의 기억


그에게 생애 최초의 기억은 1967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어느 날이었다고 한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았던 평범한 아침이 뚜렷이 기억난다고 한다.


기억의 시작은 이른 아침이었다. 시계가 따로 있지 않지만, 시골에서는 농사를 짓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다. 또 TV도 라디오도 없는 지루했던 그 시절 해가 지고, 9시만 되면 모두들 잠에 들었으니,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필연이라 볼 수 있다. 어머니는 아침을 준비하시기 위해 바스락 거리며 아궁이가 있는 부엌으로 가셨고, 아버지는 농기구를 정비하시기 위해 마당으로 나가셨다. 잠이라는 녀석이 눈에서 채 떨어지지 않았던 이른 아침 이불을 잠시 옆으로 재껴놓고 앉았다. 8평이 채 안되었던 그 초가집에는 전기는 물론 들어오지 않았고, 그 어두운 곳을 비추던 건 호롱 하나였다. 호롱은 두꺼운 나무로 만든 책상 위에 홀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바닥에는 짚으로 엮은 망석이 깔려 있고 누더기처럼 헤져있던 이불이 있다.


기억 속에 있던 호롱


그렇게 꿈과 현실 경계에 있던 중 어머니는 아침을 내어 오셨다. 밥 하나, 국 하나 그리고 나물 반찬 하나가 전부인 밥상이었다. 밥에는 쌀보다는 감자가 훨씬 많았다. '많다'라는 건 마치 비율이 나눠져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감자에 밥풀이 붙어 있던 정도다. 국도 된장을 휘휘 풀고 '시래기'라 불리는 푸른 무청을 넣어 푹 끓인 것이 전부였다.


밥상이 들어와 우리 형제들이 둘러앉았다. 큰형을 밥그릇을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며 입이 삐쭉 나왔다. 어제는 고구마가 나오더니, 오늘은 감자라며 투정을 부렸다. 나는 형의 투정을 뒤로한 채 얼른 밥을 먹기 시작했다. 먹고 나가 친구들과 놀 생각뿐이었다. 마음 한 구석에는 지루하고 어두컴컴한 집에서 나오고 싶다는 욕망이 있기도 했다.


그렇게 밥을 얼른 비우고는 문을 열고 나섰다.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고무신을 재빠르게 챙겨 신곤 마당을 가로질러 마을로 나선다. 마을에는 친구들 10여 명 남짓 중 하나는 나와있을 터였다.


짠함


생애 최초의 기억 끝에 그는 "짠하다"라는 말을 했다.

짠한 이유는 두 가지. 어머니가 아침을 드셨던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밥풀이 붙어 있던 감자를 밥이라 내놓고 투정하던 자식을 보던 어머니 마음. 어느 부모가 자식을 배불리 먹이고 싶지 않았을까? 생애 최초의 기억이 그 평범한 하루였던 건 아마 어머니의 먹먹한 마음이 어린 그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덕은 아닐까 한다.




오늘 본 그의 삶의 한 조각이 예언처럼 보였다. 어둡고 캄캄하던 가난의 집에서 탈출하고자 한 마음과 태몽에 나온 소처럼 일할 운명이 말이다.


그대의 부모님이 어린 시절 살았던 장소를 알고 있는가? 한번 여쭤보자. 전기는 들어왔는지, 신발은 무엇을 신고 옷은 무엇을 입고 다니셨는지, 그리고 그 시절 무엇을 드셨는지 말이다. 지금의 내가 지내고 있는 시절과는 무척 다름을 알게 된다. 안다는 건 이해의 출발이다. 부모님을 이해하는 좋은 시작이 될 것이다.



그에게 한 질문

1. 당신의 가족은 몇 분이신가요?

2. 태몽은 무엇이었나요?

3. 당신의 생애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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