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떠나는 모험

크래용으로 그리던 세계

by Starry Garden
학교로 떠나는 모험


1969년 OO국민학교에 입학했다. 학교는 집에서 12.5리(약 5 km) 정도 떨어져 있다. 집에서 학교로 가는 여정 속에는 산도 있고 개울도 건너야만 도착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매일이 모험이고 여행이었다. 작은 아이의 걸음으로 학교까지 가는 시간이 1시간 30분은 걸리니 늦지 않으려면 7시에 재깍 출발해야 했다.


우리의 모험의 시작은 이랬다. 우선 마을 초입에 있던 당나무-지금도 있는 그 나무는 느티나무다-에 예닐곱 명의 친구들이 모인다. 그렇게 인원점검을 마치면 그제야 출발할 수 있다. "하나, 둘, 셋... 일곱!" 그렇게 우린 왼쪽 어깨에서 에서 오른쪽 등으로 가로지른 책 보자기를 단단히 잡고 출발한다.


도로라 말하기 민망한 길을 따라 걸어간다.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걷다 보면 오른편으로 개울이 하나 흐른다. 개울 옆을 따라서 논이 쭉 뻗어 우리와 함께 길을 따라간다. 비가 오지 않은 날에는 그나마 가기 편하지만, 비가 오면 발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그리고 약하디 약한 비닐우산은 출발에는 정상이었으나, 학교에 오면 여지없이 누더기가 되어 있다. 그렇게 30분을 걷다 보면 이제야 말로 진정한 녀석이 등장한다. 산을 넘어야 한다.


산은 만만치 않다.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았다. 나무가 빽빽하게 나있으며, 아래로는 풀들이 가득 한 지금의 산과는 다르다. 산에 있던 나무는 대부분 우리를 따뜻하게 하는 아궁이로 들어가니, 나무는 많지 않았고, 부러진 나뭇가지와 낙엽들은 불쏘시개로 쓰니 산은 그야말로 민둥산이다. 언덕을 10분간 오르면 정상에 도달하고 그때부턴 아래로 뜀박질을 하며 내려간다. 후다닥. 흘리던 땀 마저 날려버릴 속도로 한달음에 내려가면 다시 평지가 나온다.


논과 밭이 다시 나타난 그곳에 우리의 출석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지점이 나온다. 바로 개울. 다리라고 하기엔 민망한 징검다리가 나온다. 비가 많이 온 날은 그 징검다리가 우리의 인원점검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라 한다. 빼꼼 돌의 머리가 약간 보일 때는 고민하며 친구들과 회의에 들어간다. '학교를 가? 말어?' 친구들과 눈빛 교환 후 우린 그 빼꼼 나온 돌머리가 없다고 합의(?)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무사히 다리를 건넌다면, 다음부턴 지구전이다. 이미 충분히 지친 우리는 재잘거림마저 사그라든다. 그렇게 조용한 상태로 20분을 더 가면 학교에 도착한다. 그렇게 9시가 다된 시간에야 교실에 후다닥 들어간다. 시골학교라 한 학년에 2개의 반, 반 마다 60명의 학생들이 우글거린다. 땀이 났다 식었다를 반복한 옷의 소금기를 보이며 책상으로 찾아간다. 그렇게 학교로 떠나는 모험이 끝난다.


모험에 지친 우리는 자체 휴식에 들어간다.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우글거리는 친구를 벽 삼아 잠을 청한다. 매일 하는 모험이지만 참 재미있었다. 그때 걷던 길도, 징검다리도 모두 도로가 되고 멋지고 튼튼한 다리가 들어서 쉽게 갈 수 있지만, 그때의 그 기억을 되살리며 다시 한번 걷고 싶어 진다.


미술시간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미술시간이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억에 남은 국민학교 선생님 이름도 미술 선생님이다. 국민학교 5~6학년 담임이 미술 선생님이기도 했고, 신입 교사의 패기가 시골 학생들에게 이른바 '서울 문물'을 알려줬기 때문이기도 했다.


의욕이 넘치던 선생님은 미술 시간이 되면 듣기만 했던 물건들을 내놓았다. 수채 물감이기도 했고, 유화 물감이기도 했다. 주변에 많던 흙과는 다른 찰기를 가진 '찰흙'으로 그릇을 조그마하게 만들기도 했고, 한지를 이용해 통을 만들기도 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크래용'으로 그림을 그렸던 시간이었다.


다채로운 색이라기에는 적은 5개 색으로 이리저리 내가 살던 마을을 그려댔다. 우리의 출석을 집행하던 징검다리도 그리기도 하고, 푸르른 논과 밭을 그리기도 했다. 그때 그렸던 작품은 남지도 않고, 그 대상도 이미 많이 변했지만, 지금도 그림을 그릴 때 그리고 서예를 할 때, 정신을 혼란하게 하던 모든 것들이 잠시 사그라든다. 그 몰입 순간이 즐거웠던 건 아마 그 시절 다양한 미술 수업을 해주셨던 선생님 때문은 아닐까 한다. 선생님 덕분에 평생 가져갈 취미가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 그가 걸었던 곳은 아스팔트로 시원하게 길이 뚫려있고, 언제든 건널 수 있는 큰 다리가 징검다리를 대신하고 있다. 또 그 시절 그가 매일 아침 보던 민둥산은 울창한 숲으로 변해 있다. 그 시절을 기억할 모든 것이 없어져버린 지금, 다행히도 그 모험의 출발지인 당나무는 아직 그 자리에 여전히 건재하다.


글을 쓰며, 모험의 시작인 그곳을 떠올리니, 자그마했던 그가 뛰어가는 모습이 상상된다. 다음에 시간이 된다면, 그와 함께 모험의 시작점에 같이 서보고 싶다. 그와 함께 짧은 모험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모험을 크래용으로 도화지에 담아 두고 싶다. 그때로 돌아간 그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그에게 말하고 싶다.


"아버지 같이 저 언덕을 넘어 보실래요?"

"이번에 그린 그림은 제가 소중히 보관할게요. 아버지 실력 한번 보여주세."



1. 학교 가던 과정은 어땠나요?

2. 국민학교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