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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Feb 05. 2023

쿼티 자판기가 개발된 이유.

너무 빠르면 고장 나 버린다.

쿼티 자판기가 개발된 이유.


최근에 타자기를 샀다. 동생 독립서점에서 편지 코너를 만들고 답장을 하기 위해서다. 편지 다섯 통에 답장을 손 편지로 하니 감당하기 어려웠다. 키보드를 쓰다 타자기를 쓰니,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타자기에 낯선 설렘이 끝나고 나니 두려움이 왔다. 틀린 글자를 쓰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하는 두려움. 집중을 했다.


컴퓨터 키보드도 빠르게 쓰지 못하지만, 타자기는 속도가 더 느렸다. 타탁 타탁 거리 소리에 몸을 맡기며 리듬을 탔다. 갑자기 호기심이 커지는 경우가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말이다. '세상에 그냥이 없다'는 문장이 호기심의 시작이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때, 참 좋은 무기가 된다. 때론 귀찮고 불편하기도 하다. 


이번에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타자기 배열. 배열된 이유가 궁금했다. 타자기 연습을 멈추고, 구글에게 여쭈어 보았다. 모든 걸 아시는 그분은 나에게 알려주신다.


우리가 쓰는 배열은 쿼티(QWERTY)다. 키보드 상단 여섯 개 알파벳을 차례로 두면 나오는 단어가 쿼티다.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두 가지 모두 빠르게 입력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타자기를 써보니 이해가 된다. 빠르게 치면 두 개의 타이프바가 함께 눌려 다음 글을 쓸 수 없게 된다. 또, 인접한 글자를 연속으로 빠르게 쳐도 겹쳐진다.


그래서 많이 쓰는 문자를 멀리 떨어뜨려 놓았고, 쓰는 속도를 느리게 의도한 배열이라고 한다. 구글이 알려준 이유를 찬찬히 다 읽고 나서 다시 타자기 연습을 했다. 타탁 타탁 거리는 소리에 집중하며.


쿼티 자판 배열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자라난다. 타자기가 말을 건다.


"너무 빠르면 고장 난다."


너무 빠르면 고장 난다.


조급하다. 바쁘게 살며 지낸다. 조금이라도 천천히 걸어가면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는 기분에 다시 조급함이 커진다. 악순환이다. 천천히 걸어갈 수 없다. 빠르게 움직인다. 계속 '빠르게' '빠르게'를 외치면 하루하루를 지낸다.


빠르게만 외치며 살면 반드시 고장 난다. 몸이든 마음이든. 몸살이 잠시 쉬어가라며 몸져눕게 한다. 어떤 날을 마음에 감기로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빠르게를 외치며 앞으로 갔기에 고장 났다. 마치 타자기처럼.


너무 빠르면 고장 난다. 그걸 막기 위해 타자기는 쿼티 자판 배열을 만들어 냈다. 느리게 치라는 의도로. 우리에게도 쿼티 자판 배열이 필요하다. 적당한 속도로, 고장 나지 않을 속도로 갈 수 있는 배열 말이다. 나에게는 글쓰기가, 그림 그리기가, 책 읽기가, 산책이, 사색이 삶의 쿼티 배열이다.


조금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글감을 찾는 글쓰기.

조금은 천천히 주위를 자세히 관찰하며 그리는 그림 그리기.

조금은 천천히  타인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책 읽기.

조금은 천천히 걸으며 나무가 내는 소리, 풀이 내는 향을 느끼며 걷는 산책.

조금은 천천히 생각하며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는 사색.


모든 일이 너무 빠르지 않게, 고장 나지 않게 하는 쿼티 배열. 우리 모두에게는 쿼티 배열처럼 속도를 늦추는 배열이 필요하다. 



한 줄 요약: 삶을 천천히 가게 하는 쿼티 배열이 필요하다.




타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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