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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Feb 02. 2023

정답을 찾는 중이 아니라 만드는 중입니다.

그래서 다 같을 수 없다.

정답을 찾는 중이 아니라 만드는 중입니다.


종종 우린 삶의 답을 찾아다닌다. 멘토를 찾아가기도 하고, 누군가가 걸어간 길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도 한다. 누군가 확신에 찬 말과 행동으로 자신이 정답을 안다고 하며 이끌어 갈 때, 머리를 숙이고 그를 따라가는 경우도 있다. 멘토나, 누군가 걸어가는 길이, 그리고 확신에 찬 그가 말하는 것이 정말 답일까?


누가 답을 알까? 아니 답을 정말 아는 사람이 있을까? 우린 복잡한 세계에 살아간다. 환경도, 조건도 참 다양한다. 비슷한 경우가 없다. 그런데도 하나의 정답이 있을까? 나에게 딱 들어맞는 정답을 누군가가 제시할 수 있을까?


몇 가지 질문으로 나를 나누고, 생년월일을 보고, 카드 몇 장을 뽑는다고 정답이 나올까? 아니라고 본다. 단연코. 그렇게 얻은 정답이 나에게 딱 맞는 정답일리 없다. 임의대로 나에게 온 문장과 기호를 나에게 맞게 해석하는 일일 뿐이다.


생각을 곰곰하게 된다. 정답을 찾는 일에 대하여. '정답'이라는 명사 보다 눈에 들어온 단어는 동사인 '찾는다'이다. 정답은 '찾는다'라는 동사가 적절할까? 우리는 다섯 가지 선택지 중 하나에 답을 찾는 일에 익숙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까지 그러한 일들에 매몰되며 살았다. 


그러니, 삶에도 그러한 정답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삶의 정답을 찾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정답에는 '찾는다'는 동사보다는 정답을 '만든다'라는 동사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만의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다 같을 수 없다.


'정답'이라는 명사에 '만든다'는 동사를 붙여 놓으니, 참 색 다르다. 가만히 보다, 닿은 생각이 있다.


그래서 다 같을 수 없다.


정답을 찾는다는 것은 마치 하나의 모양으로 생기는 답을 찾아가는 일 같다. 그래서 멘토가 정답을 알려주고, 어디엔가 답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답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참 다양한 모양이 있으리라. 정답을 만드려고 생각을 바꾸니, 누군가 선뜻 이게 정답이라고 말하고, 확신에 차서 말한다고 휩쓸리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말을 참고할 뿐이다.


또, 누군가가 가고 있는 길을 섣불리 평하지 못하겠다. 그도 그 나름대로 자신의 정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되니 말이다. '만든다'는 동사 덕분에 이해가 폭넓어지고, 남과 비교하는 일도 줄어든다.


누군가 나에게 그 길은 정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강한 어조로 틀린 길이라고까지 주장한다. 확신에 찬 말로 자신이 정답을 안다고, 함께 가자고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틀린 동사를 쓰신다고 말하고 싶다. 


정답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저만의 정답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 같을 수 없습니다.



한 줄 요약: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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