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간다.
나이 드는 일이 꽤 좋을 때도 있다.
빠른 시간이 내 나이 숫자를 올려간다. 별스런 노력도 하지 않았지만, 참 차곡차곡 많이 쌓였다. 적금이 이 정도로 모였다면 벌써 서울에 집 한 채를 사지 않을까 한다. 한가득 모인 나이를 보고 있으면, 지난날, 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나 싶다.
내 학번에 출생한 아이들이 이제 고등학교에 들어간다는 사실에 놀라고, 2002년 월드컵의 열기는 유튜브에서만 봤다는 이야기에 세대가 다름을 느낀다. 때때로, 나와 같은 나이에 있는 분이 몇 백억 대 자산가이기도 하고, 빛나는 아이디어로 사업을 시작해 몇 천억 가치 기업 대표가 되기도 한다. 또 어떤 분은 세계에 자신의 목소리와 노래를 전파하기도 한다.
다시 한번 지난날, 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나 싶다. 물론 열심히 산 증거로 학위가 옆에 있고, 좋은 분들이 있다는 사실이 있지만.
나이를 쌓아가는 일, 나이를 먹어가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은지 고민하게 된다. 누군가와 격차를 만드는 일이기만 하고, 몸이 조금씩 고장 나가는 과정이기만 할까? 생각이 자라난다.
아! 좋은 일이 꽤 있다. 나를 알아 간다는 사실.
나를 알아간다.
최근 며칠 동안 기분이 낮은 기류를 타고 흘렀다. 그럴 때가 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슬슬 기류가 낮아지더니, 한동안 그렇게 간다. 물론 이유를 찾아다가 붙일 수 있지만. 왜 아래로 가는 기류를 탔는지 정확하게 알긴 어렵다.
다만 확실한 사실이 있다. 5일 정도 뒤면 슬슬 다시 위로 올라가는 기류를 타고 그렇게 유지된다는 사실. 나를 오래도록 경험하고 관찰한 결과다. 3개월에 한 번씩 일주일 정도 낮은 기류를 탄다. 예전에는 그 낮은 기류를 어떻게든 탈출하고자 몸부림쳤다.
가져다 붙인 이유를 고치려 노력하고 그 이유를 만든 이들을 비난하기 일쑤였다. 그 기간에는 화가 잔뜩 난 채 가까운 이들 마음에 생채기를 나며 다녔다. 내 기분이 그러니, 그래도 된다고 합리화하며. 나를 알게 된 지금. 그 낮은 기류에는 휴식을 취한다. 말을 줄이고, 누워있기도 하고, 미뤄둔 드라마를 몰아보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스스로에게 회복하는 시간을 가진다. 곧 탈출하리라는 믿음으로. 나이가 쌓여가는 일이 곧 나를 알아 가는 일이다.
나이를 먹는 일이 꼭 나쁘진 않다. 오래도록 잘 지내야 하는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늘어간다는 말이니.
한 줄 요약: 나이를 쌓는다는 건, 나를 알아간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