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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May 09. 2024

집인데도 집에 가고 싶을 때 있으시죠?

가보자, 자유롭게 유랑할 나만의 집으로.

집인데도 집에 가고 싶을 때 있으시죠?


  아무 일 하지 않고 집에 있는 날이 있다. 정말 가만히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채널을 의미 없이 돌리고, OTT 서비스를 탐험한다. 시간이 흐르면 따분해진다. 읽던 책을 뒤적여 보기도 하고, 산책을 나갔다 오기도 한다. 이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을 때(사실 있지만 외면할 때). 침대에 비스듬히 눕는다. 머리에 쉭하고 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있다. 


  '집인데도 집에 가고 싶다.'


  무슨 생각인가 싶다. 나도 나를 잘 모른다는 말이 딱 맞다. 나만 하는 말인가 싶지만 그것도 아닌가 보다. 자이언티, <꺼내 먹어요>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집에 가고 싶죠? / (집에 있는데도) / 집에 가고 싶을 거야."


  궁금했다. 무슨 생각인지. 글감으로 적어두고 언젠가 답을 찾으리라는 생각만 남긴 채 잊었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생각 서랍 뒤로 한참 밀릴 때쯤. 나와 비슷한 생각이 이른 분의 에세이를 만났다. 묵혀둔 생각이 부유했다. 



  유보작가의 <집, 어느 민달팽이의 유랑>. 작가는 늘 유랑했다. 물리적 집이 아닌 곳에 적을 두며 살아냈다. 루나라는 가상이 고양이, 노트북이라는 집. 일기장이라는 활자 집. 케이팝에서 시작되어 무대로 이어지는 집까지. 작가는 집이 아닌 집에 거주했다. 단어 사이에 스민 아픔이 흘러나왔다. 마음은 먹먹해졌다. 


  다 읽고 나서 부유하는 생각을 적어내기 시작했다. 내겐 어떤 곳이 집을까? 집인데도 집으로 가고 싶을 때 가는 집은 어디일까? 여럿 떠올랐다. 물론 유보 작가처럼 물리적인 집은 가장 뒤편에 있다. 책, 일기장, 쓰다만 소설, 차. 유보 작가를 따라 나만의 집에 대한 글을 써볼까?



  1. 책. 

  장르에 따라 다르다. 인문과 과학책이라는 집, 소설이라는 집, 에세이라는 집.

  인문과 과학 책이라는 집에 드나들면 내 마음이 호방하게 커진다. 의미 없이 있던 사실을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엮어내 통찰을 꺼내준다. 눈이 환해진다. 내 앞에 있던 커다란 문제를 들고 과학책이라는 집에 들어가면, 한 없이 작아진다. 얼마나 나 사소한 일에 내 마음을 쓰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소설은 내가 어디에 있든 날 떠나게 한다. 창과 창이 부딪치고, 계략이 난무하는 중국 삼국시대로 떠나기도 하고, 탐정을 따라 미스터리한 사건을 쫓아가기도 하며, 일상 속에 있는 따스함이 있는 곳으로 떠나기도 한다. 소설이라는 집에 들어가면 걱정할 생각할 겨를도 없다. 

  에세이는 다른 사람의 삶을 잠시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열 때마다 다르다. 이런 직업이 있나 싶을 직업을 체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의 애환이 우리가 사는 것과 다르지 않음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2. 일기장.

  이순신 장군님은 아셨을까? 자신이 쓴 일기장이 세상에 공개된 것은 물론이고, 세계 기록유산으로 보호까지 받으리라고. 거기에는 날것의 장군님의 고뇌도 있고, 누군가를 (대부분 원균) 흉보는 일까지 남겨져 읽힐지 말이다. 물론 난 그런 걱정을 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 일기를 쓰다 검열했었다. 지금은? 아니다. 온갖 떠오른 생각을 머리와 꼬리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적는다. 일기장에서는 난 참 자유롭다. 생각은 여기저기 뻗어나가는 것을 막지도 않고, 그날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쏟아내기도 한다. 일기장이라는 집에 들어서면 난 누구보다 진심이 되는 나를 만나는 듯하다. 


  3. 쓰다만 소설.

  내겐 쓰다만 소설이 두 편 있다. 그 집 앞에서는 잠시 머뭇거린다. 언젠가 써야지 라는 마음 탓이다. 들어가면 즐겁다. 내가 만든 세상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의 조각을 품고 있는 등장인물이 오간다. 또 다른 등장인물은 내 곁에 있는 사람, 또 다른 등장인물은 내가 원하는 사람까지. 배경도 내 판타지가 가득 들어간 곳이 된다. 내가 만든 이야기, 등장인물과 나는 적당한 긴장감을 만든 채 이야기를 앞으로 나아가며 만들어진다. 누군가에게 공개할 날까지 써야지라며 쓰다만 소설 집에서 노닌다. 


  4. 차

  운전을 즐긴다. 혼자 타고 가면, 그곳은 가끔 콘서트장이 되기도 하고, 때론 진지한 철학적 논쟁,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역사적 사실을 라디오로 듣게 된다. 전화가 온다 해도 운전 중이라 길게 하지 못하니, 이곳이야말로 나만의 공간이 된다. 운전을 해야 하는 탓에 다른 감각기관을 멈추게 된다. 오직 귀만이 자유롭다. 흘려듣기도 하고, 가끔은 집중해서 듣게 되는 이야기들. 누구의 눈길에서도 해방 되는 곳이 된다. 



  집에 있는데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자라난다. 좋다. 어디로 떠날까? 책? 일기장? 쓰다만 소설? 아니면, 운전을 하러 가볼까? 나만의 집은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가보자, 자유롭게 유랑하다 돌아오자. 집에 있는데도 나만의 집을 향해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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