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5천만 부가 넘게 판매된 책을 쓴 소설가 스티븐 킹의 말이다. 글을 쓰고 그의 말을 기억하며 꾸준히 썼다. 뮤즈는 가끔 내가 쓰는 시간에 오셨다. 몇 시까지 오면 되는지 알려드렸지만, 그분은 그때만 오지 않는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과 장소에서 나타나신다. 그땐, 후다닥 적지 않으면 빠르게 휘발한다. 지나간 뒤 더듬거리며 찾으려 해도 뮤즈님은 흔적 한 톨 남기지 않는다.
몇 번 (수만 부가 팔릴지도 모를 아이디어를) 놓치고 나선 땅을 치고 후회했다. 그리곤 손이 닿는 곳에 필기구와 종이를 둔다. 그중 가장 많이 쓰는 건 바로 포스트잇이다. 몇 글자 써두고, 잘 보이는 곳에 두고 다시 보기에 참 좋기에 애용한다.
포스트잇. 전 세계 필수 사무용품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포스트잇의 탄생을 한 단어로 줄이면 '애매함'이 될까 싶다.
주인공은 두 명이다. 스펜서 실버 박사와 아서 프라이. 스펜서 실버 박사는 연구자다. 화학 약품을 여럿 합치고, 나누길 반복하다 접착제를 만들었다. 회사에서 보유하고 있던 접착제보다 약하고, 끈적거림은 적으며 쉽게 떨어지는 접착제다.
애매한 접착제가 만들어졌다. 그때가 1968년. 사용할 곳을 찾지 못한 박사는 고민했다. 회사에서 열리는 세미나마다 자신의 발명품을 소개했다. 애매한 제품을 사용할 곳을 찾으려 했다. 결과는? 실패. 그만두지 않았다. 애매한 접착제를 들고 장장 6년 동안 소개를 하며 다녔다.
1974년 아서 프라이가 등장했다. 그는 성가대 활동을 했다. 악보에 표시를 했다. 종이를 끼워두는데, 쉬이 빠져 다시 표시하는 귀찮은 일을 반복한 모양이다. 박사는 회사 내부 세미나에서 어느 때처럼 애매한 접착제를 소개했다. 번개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서 프라이 머리 위에는 반짝하는 전구가 켜졌다. 아이디어가 떠오른 모양이다.
둘은 의기투합했다. 접착제 관점이 아니라 책갈피나 메모지로 개념을 바꾸자. 연구를 더 했다. 지금의 포스트잇 형태가 나왔다. 출시. 사무를 보던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고. 지금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대표 사무용품이 되었다. 애매함이 관점을 바꾸더니, 새로움이 되어 필수 사무용품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난 애매함을 지극히 거부했다. 명징한 표현이 똑 부러짐의 상징이고, 직선이 되는 생각이 앞으로 나아가는 유력한 동력이라 믿었다. 그럴 때도 필요하다. 하지만, 명징하다는 건 자신이 정답을 알고 있다는 오만의 다른 말일 수도 있고, 직선으로 간다는 건 주위를 볼 수 없는 독선의 다른 단어가 될 수 있다.
선과 악이 명확하던 때가 있었고, 맞고 틀림을 빠르게 결정하던 때가 있었다. 정말일까? 아니다. 세상은 복잡계다. 그런 일은 없다. 있어 보인다면 그건 내 시야가 좁은지 알아봐야 한다. 당장 맞아 보이는 일도, 아닌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천재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아인슈타인도 자신이 만든 식을 여러 차례 고쳐 틀리기도 했고,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양자역학을 의심했다.
애매함. 그건 쓸모없음이 아니라, 아직 적합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아닐까? 애매함이 확신으로 바뀌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애매함은 과정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사고의 전환을 기다리는 일이다. 애매함. 시간이 필요한 생각이다.
애매하던 접착제가 시간의 숙성을 거쳐 세계적 문구가 되었다. 난 애매하다. 운동도 애매하고, 글을 쓰는 일도 애매하고, 하는 일 매사가 애매하다. 못해서 포기하기에는 애매하고, 잘한다고 하기에는 눈에 띄지 않는 나. 과정이다. 어딘가로 가는 과정. 누가 알고 있으랴. 포스트잇처럼 애매함이 꽝하고 터지는 순간을 맞이할지.
오늘도 생각지 못한 순간에 뮤즈님이 오셨다. 포스트잇에 몇 자 적어준다. 수천 만부가 팔릴 아이디어가 적혀있을지 모른다. 애매한 생각을 적어두고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