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도 어김없이 독서모임 시간이 왔다. 독서모임이 늘 기다려지는 이유는 책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있지만, 서로 어떤 책을 가져왔을지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도 조금 일찍 커피문고에서 책 친구를 기다리며 차를 한잔 마셨다. 다들 설레는 마음이 가득하셨는지 조금은 일찍 딸랑 거리는 소리를 내며 오신다.
얼른 어떤 책을 가져왔을지 눈은 손을 좇아 책 이름을 본다. 오후 8시. 함께 독서모임을 준비한다. 한분은 커튼을 치고, 한 분은 책상을 옮긴다. 나는 조명을 끄고 세상과 분리됨을 딸깍 거리는 소리로 알린다. 자. 이제 다들 어떤 책을 가져왔는지, 이유를 함께 들어보자.
O 초록 (커피문고 대표)
- 가져온 책: <생각 의식의 소음>
- 읽은 책: <월요일의 말차 카페>
O 로즈
- 가져온 책: <장 그르니에 섬>
- 읽은 책: <달과 6펜스>
O 미뉴잇
- 가져온 책: <흰>
O 알투 (Starry garden)
- 가져온 책: <죽은 자의 집 청소>
- 읽은 책: <이 땅에 태어나서>, <정세현의 통찰>
참 다양한 책을 가져왔다. 초록이 가져온 <생각 의식의 소음>. 내가 하는 일이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생각. 우선 스스로를 알아보는 탐구를 시작하게 하는 책이다. 인문학이 우리 삶에 왜 필요하게 되는지 알게 되는 책이라 한다.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궁금하다.
장 그르니에,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다. 처음 들어본 이분은 알베르 카뮈에 연결된다. 카뮈는 <섬>이라는 책 서문을 길게 적어뒀다고 한다. 그만큼 카뮈에게 무척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프랑스를 뒤흔들고 세상에 진동을 준 카뮈는 어떤 이유로 이 책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진다.
미뉴잇이 가져온 <흰>은 <채식주의자>를 쓴 한강의 작품이다. 온갖 흰색을 가진 것들이 내는 이야기를 담은 책 책 표지도, 책 제목도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알기 어렵다. 읽고 난 뒤 어떤 이야기 있었을지 기대된다.
내가 읽은 <죽은 자의 집 청소>는 특수청소를 하는 작가 이야기다. 죽음을 가까이하며, 경험한 묵직한 이야기. 그 일을 하며 떠오른 생각으로 가득하다. 죽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는 책이다. 이 책이 마음을 한동안 무겁게 했다.
가져온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오늘의 질문이다.
오늘 질문
참 다양한 책을 다양한 이유로 선택해 가져오신다. 그리고 지난날 나도 참 다양한 이유로 다채로운 책을 택하고 읽었다. 마음에 오래 남을 책도 있었고, 다 읽지 못하고 남겨둔 책도 가득하다. 궁금해졌다.
읽을 책 중에 대차게 실패한 책이 있으신가요?
오래도록 책을 좋아하고 읽었기 때문일까? 많다며, 어떤 책을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까지 하신다.
O 초록
: 불안과 강박 등 심리에 관한 책입니다. 스스로가 불안이 많아 읽게 되는 책입니다. 책 대부분은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불안을 자신은 이렇게 극복했다고 말합니다. 책을 반복적으로 보게 되니, 오히려 극복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작아 보이더라고요. 이제는 읽지 않습니다.
O 로즈
: 심리학 책 중 하나가 떠오릅니다. 마음이 아파서 책을 읽었는데, 책에서 자꾸 제가 잘못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모든 문제는 저에게 있다고 할 때마다 아픈 마음이 더 아파졌습니다.
O 미뉴잇
: 저는 소설 책 하나가 생각 납니다. 읽은 시간 자체가 후회됩니다. 자기 연민으로 가득 찬 찝찝한 책입니다. 거기다, 작가의 삶을 알게 되고는 더 후회한 책입니다.
O 알투
: 서른 살에 관한 책과 행동 심리학에 대한 책입니다. 앞에 책은 전형적인 서른 살. 잘 사는 서른 살이 하나의 정답처럼 그려져 있더라고요. 제가 그 틀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자존감을 떨어트리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뒤 책은 사람에 대한 이상한 선입견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모두들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누군가에게는 실패가 누군가에게는 성공일 수 있다.
로즈님께서 실패라고 말한 그 책은 나에게는 무척 감명을 준 책이었다. 미뉴잇께서 실패하신 소설은 로즈님에게는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실패가 누군가에게는 성공일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추천해 달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나만은 아니고, 독서 모임에 오신 모든 분들이 한 번씩 들어본 모양이다. 그럴 때마다 난감하다. 바로 이런 경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실패가 누군가에게는 성공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고장 난 테이프처럼 하는 말이 있다.
"그냥 읽어.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덮고. 그렇게 너에게 맞는 책을 찾게 될 거야."
책을 읽는 일에 성공이라는 말을 붙이는 일이 이상하기까지 하다. 누군가에게는 인생 책이 누군가에게는 라면 받침대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책은 그저 시도할 뿐이다. 시도하다 보면 스스로의 기준이 생길 테고, 자신에게 맞는 책을 찾게 될 것이다.
누군가가 추천한 책이 꼭 좋은 책이 아닐 수 도 있다. 그러니 시도하자. 그럼 당신의 책을 알게 될 테니. 우리는 서로가 실패한 책에 대해 계속 이어갔다. 이 또한 재미있는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