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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Feb 26. 2023

묘박지를 아시나요?

내 삶의 묘박지.

묘박지를 아시나요?


"작가는 말을 수집하는 사람" 김영하 작가의 말이다. 말을 수집하는 거창한 일까진 아니더라도, 생경한 단어를 보면 찾아보고 기억하려 애쓴다. 텔레비전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다 눈에 들어온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묘박지.


참 낯선 단어다. 어떤 단어인지 사전이 알려주리라.


묘박지: 배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해안지역. -네이버 국어사전-


묘박(錨泊)과 지(地)가 합쳐진 단어다. 한글로 순화해보면 닻을 내리고 배를 대는 곳이다. 묘박지 조건과 몇 가지 기능이 있다. 우선 배가 주차하는 곳이니, 항구와 가깝고 충분히 넓으며 깊어야 하지만, 배가 오가는 길과는 멀리 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짐을 싣고 내리며, 보급을 위해서 항구와는 가까워야 한다. 


묘박지 조건과 기능을 가만힌 톺아보니, 우리 삶에도 꼭 필요한 곳이 묘박지인 듯하다.


내 삶의 묘박지.


삶은 자주 항해에 비유된다. 거친 조건, 생각하지 못한 환경이 늘 다가오는 바다와 삶이 비슷하게 때문이리라. 맞다. 삶을 험난한 항해다. 하지만, 항해만 할 수 있을까? 항해 중간중간에 우린 부두에 들어가 연료도 넣고, 음식도 채워 넣어야 한다. 가끔 배가 고장 나면 한참을 머물러 수리를 해야 다시 떠날 수 있다. 


어떤 날은 부두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있다. 부두에 갈 힘조차 없는 날. 부두에 들어가도 연료를 채워야 하는 일을 해야 하고, 수리를 해야 하는 일조차도 버거운 날. 그날에 우리는 묘박지에 들어가야 한다. 생각이 오가는 일에서 벗어나고, 사람이 오가는 곳에서 벗어나는 묘박지. 다만, 언제든 부두에 들어갈 곳인 묘박지.


묘박지는 장소일 수도 있고,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카페에서 아무도 알 지못하는 공간이 묘박지가 될 수 있고,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묘박지가 된다. 오늘은 부두에 들어가지 않고 묘박지에 머물고 싶다.


험난한 항해를 멈추고, 닻을 내리고 배를 가만히 두려 한다. 이곳은 나에게 묘박지다.



한 줄 요약: 항해라는 삶을 쉬어가는 나만의 묘박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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