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걸러서 글쓰기: 여과(filtration)

날 것의 생각과 읽을 가치가 있는 생각으로 분리

by Starry Garden
여과


수처리 기술에는 여과가 있다. 여과는 폐수를 작은 구멍이 많은 막이나 층을 이용해 구멍보다 작은 입자를 물에서부터 분리하는 것을 이른다(물론 물일 수도 있고, 기체가 될 수도 있지만, 이번 글에서는 물을 기준으로 삼겠다). 여과는 압력 차이를 만들어 작은 구멍이 있는 막이나 층으로 물을 흐르게 하는데, 이를 통해서 여과를 진공 여과, 가압 여과, 압착 여과, 원심 여과로 나눌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간단히 말해 여과가 일어나는 곳을 기준으로 심층 여과, 표면 여과 그리고 막여과가 있다.


특히 막여과는 입자성 물질과 콜로이드*성 물질은 물론 용존 물질까지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이다. 다양한 물질을 하나의 기술로 제거할 수 있는 이유는 '막'덕분이다. 막은 선택벽(selevtive barrier)으로 막에 따라 원하는 물질과 그렇지 않은 물질을 분리할 수 있다.


콜로이드: 기체, 액체, 고체 속에 분산 상태로 있고 확산 속도가 느리며, 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으나 원자 또는 저분자보다는 커서 반투막을 통과할 수 없을 정도의 물질. -표준국어대사전-


막의 구분은 구멍 크기(공극 크기)와 운전 방법에 따라 분류하는데, 정밀여과(microfiliteration, MF, 공극크기: >50 nm), 한외여과(ultratfiltration, UF, 공극크기: 2~50 nm), 나노여과(nanofiltration, NF, 공극크기: <2 nm), 역삼투(reverse osmosis, RO, 공극크기: <2 nm), 전기투석(electrodialysis, ED)으로 나눌 수 있다.


앞서 여과는 압력 차이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정밀여과와 한외여과는 비교적(?) 큰 공극을 가지고 있어 낮은 압력으로 구동되고, 나노여과와 역삼투는 높은 압력이 필요한 공정으로 분리된다. 즉 작은 구멍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더 높은 압력이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막여과를 하고 나면 투과수(permeate)와 농축수(retentate)가 나온다. 우리가 원하는 깨끗한 물이 투과수로 나오고 우리가 원치 않은 물질이 농축수로 나오게 된다. 농축수는 우리가 원치 않은 물질이 유입수(feed water) 비해 높아 농축수라 이른다.


익숙지 않은 말을 길게 했지만, 간단히 말하면


'여과는 오염물질과 물을 분리하는 것.'

'막여과는 다양한 구멍 크기의 막을 이용해 여과를 하는 것을 이른다.'로 정리할 수 있겠다.


생각 걸러서 글쓰기


글쓰기도 여과가 필요하다.

우리는 참 많은 생각을 하며 산다. 캐나다 퀸스대에서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성인들의 경우 하루 평균 6,000번 이상의 생각을 한다고 보고했다. 숫자로 보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라는 또 다른 생각이 든다. 이런 수많은 생각들은 그야말로 흘러간다. 그리고 그 흘러간 생각들은 좀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흘러가는 생각 속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생각도 있지만, 때론 황금 같은 영감이 흘러가기도 하는데, 이를 잡기 위해 늘 메모지를 들고 다는 사람도 있으니, 그야말로 쉼 없이 흘러가는 게 바로 생각이다.


이런 수많은 생각을 다 잡진 못하더라도 붙잡기 위해 우리는 글을 쓰는데, 형식은 다양하다. 일기가 될 수 있고, 수필이 되기도 하며, 시가 되기도 한다. 그중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글쓰기가 일기이다.


최근에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나온 박보영 씨는 일기를 참 열심히 진심을 다해 쓴다. 그녀는 일기를 매일 쓰는데, 쓴 일기를 금고에 넣어두기도 하고, 친구에게 자신이 갑작스러운 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일기를 대신 태워(?) 달라고 부탁한다. 일기는 매우 사적인 생각들이 있어 그 누구에게도 보이기 어려운 '날 것'이 가득하다. 6,000번의 생각 모두를 타인에게 보여주는 건 불가능할뿐더러, 그 정도의 날 것을 보여주는 건 무척 부끄러운 일들이 될 수 도 있다.


따라서 가장 사적인 일기에서 벗어난 글을 쓰고자 한다면, 생각을 걸러서 써야 한다. 우리가 하는 수많은 생각들을 여러 선택 막을 통해 거르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글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응원과 위로가 되는 글이 되기도 하며,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는 글이 되기 도한다.


생각이라는 유입수를 막을 통해 불필요한 생각들, 과격한 생각들을 농축시켜 분리한다면 맑고 선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만한 깨끗한 물인 투과수가되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글이 되리라.


내 경우에는 몇 가지의 막을 통해 글을 써내고 있다. 가장 날 것의 글쓰기는 아침마다 쓰는 감사일기와 어제를 생각하며 쓰는 일기다. 이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여과되지 않은 글을 마구 써버 린다. 말 그대로 내 생각을 쏟아 내며 쓴다. 검열도 없고 제한도 없다. 그러니 오롯이 나를 위한 글쓰기가 된다. 나를 답답하게 했던 일이나, 좋았던 일을 망라해 모든 것을 내놓고 본다. 그 순간 해소됨을 느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글쓰기가 된다. 오직 나를 위한 글쓰기이다.


다음은 누군가에게 보여주지만, 내 감상이 참 많이 들어간 글이다. 글감은 일기에서부터 오기도 하고, 내가 읽은 책에서부터 오기도 한다. 브런치에서 연재하여 쓰고 있는 <공학박사의 생각 조각들>, <우편물 운송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가 전자의 글쓰기라 할 수 있고, 티스토리에 연재하고 있는 서평이 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보다 더 작은 구멍이 있는 막으로 여과하여 누군가에게는 선한 영향력을 미치면 좋겠다 하여 쓰는 글이 <나를 다루는 일>, <자네 대학원생인가>, <환경기술로 읽어내는 삶 이야기> 정도겠다. 거르지 않는 날 것의 글부터 누군가에게 읽을 가치가 될만한 글까지 여과를 통해서 글을 쓴다.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들어내는 일이다. 하지만, 무작정 6,000번의 생각을 그대로 들어내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러 단계로 분류해 써보는 건 어떨까 한다. 이번에는 자신의 감상을 들어내는 막을 통해 일기를 걸러 에세이가 되게 하고, 자신이 깨달은 바를 걸러 자기 계발서가 되게 하는 여과 말이다.


여과라는 기술로 글쓰기를 설명하면


'글쓰기는 날 것의 생각과 읽을 가치가 있는 생각으로 분리하는 것.'

'글쓰기는 다양한 막을 이용해 생각을 여과해 쓰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나만을 위해 쓰는 날 것의 글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쓰다 보면 누군가가 읽어 주길 바라게 된다. 그럼 반드시 읽을 가치가 있어야 한다. 독자는 시간을 내어 내 글을 읽을 이유가 있어야 기꺼이 읽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날 것의 내 생각을 몇 가지의 막을 통해 여과해야 한다.


하나의 막이 아니라 여러 개의 막을 통해 내 생각을 여과해 읽을 가치 있는 글을 써내 보자.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건 꾸준히 쓰기이다. 쓰다 보면 막이 생기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쓰지 않는다면, 분류할 것도 없다. 그러니 써야 한다. 물론 힘이 든다. 여과를 위해서는 압력이 필요하듯 글쓰기에도 힘이 필요하다. 생각을 눌러 막을 통과시키는 힘이 말이다. 잘 안되더라도, 계속 도전이 필요하다.


그럼 그대의 '날 것'의 생각은 무엇이고 그대가 사용할 수 있는 막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쓰자. 무엇이든 써야 시작할 수 있다. 그대의 글쓰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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