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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Mar 28. 2024

낡아가는 시간을 보관하는 방법.

시간을 박아 놓는 방법.

낡아가는 시간을 보관하는 방법.


  새해가 낡아간다. 새로운 해라며 즐거워했던 때가 얼마 전이다. 올해는 다르리라 생각하며 했던 다짐은 아득하게 느껴진다. 학생들은 "학기가 시작하면!"이라는 말을 하며, 결심을 멈춰놨을 테다. 직장인도 옅게 흘러 오는 봄바람에 다짐은 흩어지고 만다.


  시간. 성실하고 꾸준하다. 잘 흘러간다. 단단한 결심을 쓸어갈 정도로 강하다. 곰곰 생각해 보면,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도 까먹는 마당에 새해 결심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기억하는 일이 되려 기이하게 여겨지는 일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일 뿐이다. 


  얼마 살지 않았다. 그래도 돌아보면, 흘러간 시간이 놀라울 따름이다. 대학교, 대학원, 고등학교 기억이 생생하지만, 시간으로는 아득하다. 지나간 시간이 야속하지만, 어쩌랴. 최근 책장을 정리하며 한참 앉아 본 책이 있다. 일기다. 강제로 썼던 초등학교 일기.


  삐뚤빼뚤하고, 묘하게 균형이 어그러진 글씨. 그때도 난 고민을 하고 있었고, 때로는 재미있게 친구들과 논 기억이 남아있다. 남이 볼까 두려울 일기가 이제는 추억이 되어 거기에 박혀 있었다. 일기. 비슷한 날을 기록한 글. 그만그만한 일들이라 잦게 잊고, 자주 잃어버리는 사건들이 새겨진 책. 일기다.


  지난 만 2년. 글을 매일 썼다. 분야도 다양하다. 에세이도 쓰고, 독후감도 쓰고, 과학에 관한 글도 썼다. 최근에는 유튜브에 좋은 노래의 한 부분을 따서 쓰기도 한다. 매일이 기록이다. 가끔이지만 일기도 남긴다. 일기를 보고 난 뒤, 일기 쓰기를 하나 더했다. 이순신 장군님의 일기를 보며 언젠가 쓰리라는 다짐을 최근에야 시작했다.  



  쓰는 일은 참 의미 없어 보인다. 무엇이 남겨지는지 잘 모른다. 다만, 시간이 흐른 뒤 읽어야, 읽을 만큼 쌓여야 의미가 보인다. 물론 타인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중요하지 않다. 시간이 가져간 내 기억을 되살리고, 그때와 내가 다름을 아는 것. 그것 만으로 참 의미 있는 일이라 믿는다. 시간을 찍는 일. 시간을 박아 놓는다. 글들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순간. 어디 도망가지 못하게 시간을 쾅하고 박아놓았다는 기분. 


  쓰면 된다. 다만, 잃어버리지 않게 한 묶음으로 모아 두어야 나중에 찾아볼 수 있다. 블로그도 좋고, 일기장도 좋다. 쓰고 모아두면, 곧 시간이 거기에 멈춰 박혀있게 된다. 어떻게 쓰냐, 누가 보면 어쩌냐, 내 글이 이상한테 써 두는 게 맞냐... 나도 여전히 하는 질문이긴 하다. 


  글을 꾸준히 쓰고 있으니, 거기다 운 좋게 책까지 냈다. 난 여전히 내 글이 별로인 순간이 잦다. 앞으로 멋진 글을 쓰는 일에는 자신이 없다. 감동이 되는 문장을 엮어낼 용기도 없다. 다만, 시간을 박아 놓는 일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가볍다고. 펜을 들고 빈 종이에 쓰면 되고, 하얀 화면에 키보드를 투닥거리며 무언가를 남기면 되고, 글은 언제나 구리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누군가 보는 게 무엇이 중요할까? 잘 쓰는 게 무엇이 그렇게 필요한 일일까? 그냥 쓰면 된다. 그냥 남기면 된다. 그럼 그 순간은 어디 가지 않고 거기에 남겨둔 내 이야기가 있으니 그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믿는다. 오늘도 쓴다. 오늘도 남겨둔다. 시간을 박아둔다. 낡아가는 새해를 다듬어 둔다. 새로운 해라며 흥겨워했던 날을 떠올린다. 진해지는 봄바람을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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