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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Apr 02. 2024

함께 낡아가고 싶은 물건-만년필.

우연으로 만난 만년필. 함께 낡아가고 싶은 만년필. 클래식이 되길 바라며

함께 낡아가고 싶은 물건-만년필 편.


  만년필. 함께 낡아 가고 싶은 물건이다. 언제부터 썼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니 5년 전이다. 필기구는 다 쓰면 버리는 게 일상이었다. 쓰기는 편하지만, 정을 붙이기도 전에 새로운 녀석을 쥐고 적어 내려갔다. 우연히 만났다.


  여자친구가 상을 받았다. 부상으로 만년필을 받았다. 그녀도 나도 필기구에 관심이 없던 터라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다. 파란색 '라미 사파리' 그녀는 자신은 쓸 일 없다며, 내게 넘겼다. 쓰는 방법도, 쓸 줄도 몰랐다. 잘 보이는 곳에만 두고, 먼지가 이불을 덮었다. 


  썼을까? 안 썼다. 귀한 물건을 쓰지 않고 망가뜨리는데 선수다. 아끼다 못쓴다. 그렇게 만년필이 잊힐 때, 선물한 여자친구가 쓰고 있냐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 저였다. 또 아끼지 말고 쓰라고 한다. 은근한 압박에 그제야 썼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내가 원하는 대로 글이 쓱쓱 만들어진다. 쓱쓱. 계속 썼다. 의미 없는 글을 썼다. 한참 썼다. 삐뚤한 글씨가 보기 흉했다. 의미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잘 쓰고 싶었다. 그게 내 만년필의 시작이 되었다. 색도 펜 촉도 다른 만년필을 여럿 샀다. 지금은 매일 쓴다. 이젠 짧은 영상도 만들고 있다.



  만년필을 쓸수록 매력적이다. 내 시간을 먹고 자라난다. 같은 만년필이지만 변한다. 오래 쓸수록 내게 딱 들어맞게 된다. 펜촉, 닙이 내 습관을 먹고 모양을 바뀐 덕분이리라. 이제는 라미 사라리 6 자루를 쓴다. 돌려쓴다. 내가 구매한 시간이 다르고, 닙을 교체한 녀석도 있다. 매번 조금씩 다른 느낌의 글씨가 나온다. 물론, 시간이 지나갈수록 한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 


  만년필은 나도, 다른 사람도 모르는 습관을 흠뻑 머금고 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낯선 만년필은 점점 나만의 만년필이 된다. 펜은 닳아간다. 오롯이 나만의 펜이 된다. 


  낡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헐어지지만, 난 좋다. 낡는다. 너절해지는 물건이 아니라, 나라는 시간을 담고 있는 물건이 된다. 조금 멋진 말로 한다면 클래식해진다고 할까? 아니면 빈티지로 세월을 받아 안은 모습이랄까? 우린 참 많은 물건을 쓰고, 버리기를 반복한다. 빠르게 새것으로 교체하며 신선함을 느낀다. 세상에 흐르는 도도한 흐름처럼 보인다. 반대로 가는 좋아하는 모양이다. 만년필과 함께 낡아가고 싶다. 거기에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싶다. 글, 손때를 그대로 새긴 만년필. 언제나 생각을 표현해 주는 만년필. 


  손 글씨를 쓰면 평소에 쓰지 않던 뇌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일상에서 쓰지 않는 부분이 글씨로 나온다. 내가 알지 못한 모습이 활성화된다. 덕분에 나도 모르고, 다른 이도 모르는 모습을 만년필은 안다. 나라는 사람의 짧은 역사를 함께하는 것. 바로 만년필이다. 나를 모두 받은 만년필이 멋지게 된 다면, 나도 모르는 모습이 담겨져 나도 멋진 사람 모습을 한 조각 있다는 방증 아닐까? 다른 물건보다 애정이 담기는 만년필. 우연으로 만난 만년필과 함께 오랜 시간 동안 함께 낡아가고 싶다. 그 끝이 클래식하게 남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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