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내가 쥐고 있는 책은 <말술남녀>. 술에 진심인 네 분이 모여 만든 이야기가 가득하다. 책에서는 그윽한 술이 만들어진 이야기와, 향긋한 맛이 느껴지는 술이 가득하다. 술을 잘 먹지 못한 나에게는 많은 양의 술이 허용되지 않는다. 한 잔 한 잔에 진심이 된다. 이야기가 있는 술을 안내하는 이 책이 참 좋다.
책이 전하는 맛과 향을 따라 걷다 보니, 이번에도 책 친구들이 떠올랐다. 저번에 있고 있던 바텐더 복장은 접어두고, 말끔한 개량한복을 입고 친구들 앞에 한잔씩 둔다.
O 농부 (커피문고 대표)
- 경주교동법주
O 목마리
- 전주 이강주
O 샤샤
- 호가든
O 백작 (starry garden)
- 해창 막걸리
술 한잔.
오늘도 모인 책친구. 친구들 앞에서는 양은으로 만든 잔, 백자 잔, 청자 잔 그리고 맥주잔이 서로 다른 키를 자랑하며 앉아있다. 빙그레 웃으며 잔에 서로 다른 술을 따른다.
O 농부 (커피문고 대표) : 경주교동법주
찹쌀로 빚은 달달한 술은 나이가 지긋하시다. 이분의 이름은 신라시대 때부터 등장하신다. 헛기침을 하며 나를 잘 바라 보라는 엄숙함까지 느껴지는 술. 자그마한 흰색 도자기 잔에 또르륵 따르고 나면 향이 그윽하게 퍼진다.
한 모금 목으로 넘기면 달큼한 맛까지. 진한 달콤함은 설탕이 아니라 찹쌀을 꾹 눌러 짜서 만든 맛이다. 격조 있는 어른답게 은근하고 은은하다. 이 분은 만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만나고 나면, 알고 나면 잊을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술이다.
동생은 낯을 가린다. 장사를 하며 늘 두꺼운 가면을 쓴다. 접근하기 어렵다. 하지만, 난관을 뛰어넘어 알게 되면 그윽한 향을 지닌 사람임을, 대화를 나누며 은근한 단맛이 나는 친구임을 알게 된다. 동생에게 딱 맞는 술이 바로 교동법주다.
경주 교동법주
O 목마리: 전주 이강주
물이 좋은 전주. 좋은 물은 배를 잉태해 냈고, 생강을 키워냈다. 물, 배, 생강이 만나고, 계피, 울금, 꿀이 도우니 이강주가 태어났다. 전주배는 나주배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생강의 유명세는 <택리지>에 기록되어 있다.
울금은 혈액순환과 면역력을 높이니 위장과 간이 튼튼해지는 약이 된다. 생강은 자신이 가진 열을 사람에게 나눠 주니, 체온을 높이고 성인병을 예방하는 든든한 친구가 된다. 거기다 계피가 더해지니, 몸에 있는 독소를 밀어낸다. 술이 아니고 약에 가까운 술이 바로 이강주다.
외국 사촌까지 있다. 독일 예거마이스터, 프랑스에 뱅쇼. 목마리 님 앞에 놓인 청자 술잔에 이강주를 채운다. 하이에나처럼 마음을 할퀸 이들의 상처가 빨리 낫길 바라며. 든든한 친구가 되는 술이 되길 바라며.
전주 이강주
O 샤샤: 호가든
열악한 수도시설. 물만 먹으면 탈이 났을 테다. 수도사들도 물이 주는 고통을 피해 할 수 없던 모양이다. 그들은 먹는 물을 대체하기 위해 맥주를 만들고 노하우를 은밀히 전수했다. 또, 액체 빵이라고 불릴 만큼 배를 든든하게 하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500년 역사를 가진 호가든은 2차 세계대전에 치이고, 뒤에서 따라온 맥주에 치여 잠시 종적을 감췄다. 그러다, 고향 맥주를 살리겠다는 청년의 노력으로 부활한다. 급격한 성장을 감당하지 못한 청년은 호가든을 넘긴다. 사라지고, 고난을 당한 맥주. 긴 세월만큼이나 상처가 가득한 맥주가 바로 호가든이다.
두꺼운 육각 호가든 전용 잔에 거품을 충분히 내어 따른다. 향긋한 향이 책 친구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봄처럼 따스한 기운이 책 친구 마음에 남길 바라며.
호가든
O 백작: 해창 막걸리
일제강점기 흔적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곳. 해창 막걸리 양조장. 해창 막걸리는 수탈된 곡식이 떠나는 자리, 좋은 물맛이 만나 태어났다. 일본 향이 훅 들어오는 회유임천형 정원이 있다. 정원 가운데에는 600살이 넘으신 배롱나무가 당당한 모습을 보이시고, 뒤이어 석류나무와 동백나무가 서있다.
번듯한 모습을 보이는 나무는 모든 기억을 담고 있다. 이곳은 한국의 맛을 가득 담고 있다. 담백하고 은근한 단맛을 느낄 수 있는 막걸리. 막걸리 근본에 가장 가까이 가고 있는 술. 별이 총총 빛나는 내 정원에서도 막걸리를 한잔 빚고 싶다.
양은 잔에 막걸리 근본을 담는다. 향을 느끼고 맛을 감각하며. 내 마음을 빚은 향과 맛을 알아가려고 한다.
해창 막걸리
모양이 다른 잔처럼, 서로 다른 맛과 향처럼. 다른 배경을 가진 친구들 채워진 잔을 마신다. 달달하고 속을 뜨뜻하게 만드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가 책을 가운데 두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이유도 달달하고 속이 뜨뜻한 사람이라는 공통점 때문이리라.
오늘도 한 잔 들이키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눠 본다.
"짠"
한 줄 요약: 다양한 술처럼, 나에게 맞는 술이 있으리니.
다음은 와인 편으로 이어집니다.
P.S.
말술남녀 저자 명욱 작가님 브런치가 있더라고요.
책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 덕분에 술에 한발 다가갔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