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Writing Era, Writing Era
글쓰기를 꾸준히 하면 벌어지는 일.
역사를 좋아한다. 세계사라는 커다란 흐름을 보며, 현재에 미치는 영향을 보는 일도 흥미진진하고, 작게는 역사라는 격랑 속에서 한 사람이 겪는 일을 보며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거기다, 과거에 있는 역사는 시간이 분리되어 있는 일이 아니라 지금에도 연결되어 있는 경우를 보면 짜릿하게도 하다. 책을 보며 느끼기도 하고, 유물을 보며 체험하기도 한다.
역사는 연속되는 흐름이지만, 한눈에 알기 위해서 우리는 중요한 사건을 기점으로 나눈다. 대표가 바로 B.C. 와 A.D. 라 할 수 있다. B.C. 는 Before Christ, A.D. 는 Anno Domini다. 근대와 현대를 지배하고 있는 문명이 만든 기준이라 할 수 있겠다. 최근에는 용어를 바꾸자는 움직임이 있는 모양이다.
B.C.E와 C.E. 다. B.C.E는 Before Common (Current) Era, C.E. 는 Common (Current) Era다. 지점은 같지만 표현을 달리하는 것으로 종교 중심을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인 듯하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생각보다 언어가 생각을 지배하는 힘은 강하니 생각을 넓게 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내 삶도 끊어짐이 없는 연속이지만, 몇 가지 사건으로 분기를 표시할 수 있겠다. 대학학과를 정하는 일, 대학원에 진학한 일, 박사학위를 받은 일, 안식년을 가진 일.. 여러 사건이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하다, 생각하나 가 유독 눈에 띄었다. 바로 글쓰기.
나만의 방법으로 지점을 만들어볼까? Before Writing Era (BWE), Writing Era (WE)로 나누고 싶다. 글을 쓰고 나서 마음의 변화도 있고, 밖의 변화도 있다고 할 수 있다. 거기다, 꾸준히 글을 쓰고 나서 벌어지는 일이 참 많다.
첫 번째는 '잘' 관찰한다.
글을 쓰고 난 뒤부터는 무언가를 잘 관찰하기 시작했다. 흩어져버릴 일을 잘 보고, 의미를 솎아 내기도 하고, 때로는 늘 보던 순간을 관찰하고 의미를 발굴해내기도 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라는 단서로 인하여 주위를 잘 보게 된다. 거기다 관찰은 곧 사람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회가 되고, 공감하는 영역을 넓히는 일이 되기도 한다. 잘 관찰하는 일로 시작된 글쓰기는 보는 눈이 조금은 예민하고 넓어진다.
두 번째는 '잘' 듣게 된다.
글은 관찰에서만 오는 건 아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이들로부터 오기도 한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생각을 하는 이들을 대화로 알아가게도 한다. 가끔은 그들의 생각을 듣게 되고, 그들의 마음을 알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나에게는 대표가 바로 부모님과의 대화다. 그분들이 하는 생각을, 그들이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을 엿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거기다, 잘 듣게 되니 부모님들의 선택을 이해하게 된다. 누군가와의 소통은 우선 듣는 것으로부터의 시작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세 번째는 '잘' 정리한다.
나는 나를 잘 모른다. 부유하는 생각을 통해 희미하게 알 뿐이다. 부유하는 생각을 정리하고 논리에 맞춰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조금씩 선명해진다. 이를 꾸준히 하다 보면 나라는 존재가 점점 명징해진다. 글쓰기는 내면을 보여주는 일이다. 마치, 정원을 꾸며놓고, 초대해 둘러보는 일과 비슷하다. 결국에는 정리된 생각을 물리적으로 밖으로 내놓고 나를 알아가는 기회가 된다.
내면의 변화 말고도 소소한 외부의 변화도 있다. 우연한 기회로 지면을 내어주는 곳에 내 이름을 걸고 글을 쓸 수도 있고, 때로는 생각하지도 못한 기회를 맞이해 책을 쓰기도 하니 말이다. 가끔은 누군가 나에게 '작가'라고 불러주기도 한다.
꾸준히 쓴다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변화는 확실하다. 내가 지난 1년 동안 했고, 느끼고 있고, 체험하고 있다. 누군가 내 전체 인생을 조망하고 중요한 사건으로 전후를 나눈다고 물어본다면! 난 주저 없이 말하리라. 글쓰기 전 Before Writing Era (BWE)과 Writing Era (WE)로 나눈다고 말이다.
덧붙임
여러분에게 중요한 분기점은 어디이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