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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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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Jun 13. 2023

헌순도 한때는 새순이었다.

헌순을 기억하렵니다. 

헌순도 한때는 새순이었다.


  화창한 요즘 산책이 즐겁다. 바람을 타고 생생한 생명이 코를 타고 오는 느낌이다. 바닥을 발로 느끼며 나에 집중하며 걷는 명상을 하기도 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있던 주위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화려한 벚꽃은 생명을 불어넣는 비를 흠뻑 맞고는 자기 일을 다했다는 듯, 흔적하나 남기지 않은 채 가버렸다. 그렇게 시선은 위에 머물며 천천히 걸어갔다. 날이 좋은 덕에 산책을 나온 강아지. 귀여운 강아지를 보느라 시선을 자연스레 아래로 머물렀다. 


  그곳에는 푸르른 빛을 내는 화양목이 있다. 나뭇가지 끝에는 부드럽고 작은 잎들이 봄에 기운을 받아 뻗어가고 있다. 귀엽고 연약한 잎이 힘을 내고 있다. 시선을 거두고 이제는 산책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려 발걸음을 옮겼다. 걷다 보니, 생각은 멈췄고, 질문을 하나 남겼다.     


  “우리는 왜 새순만을 응원할까?”


  생각을 짚어가니, 새순에만 이름이 있다. 단단해진 잎에는 이름도 없다. 새순에 반대이니 헌순일까?  새순과 다르게 헌순은 단단하고 두껍다. 세월이라는 시련을 겪으며 에너지를 몸에 축적하고, 위험으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를 견고하게 만든 덕분이다. 헌순도 세월을 견뎌내고 있다. 그들이라고 힘든 순간이 없을까? 헌순이라도 힘든 시간을 버텨내고 있을 테다. 온 힘을 다해 살아 남고 있으리라. 거기다 새순이 자라나기 위한 에너지를 나눠주고, 뿌리가 물을 찾아갈 수 있도록 더 뻗어 나가는 힘을 준다. 


  노력하는 헌순을 잊고, 새순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나면, 수고했다면 모든 이들이 박수를 치고 응원한다. 헌순은 아무런 불평 없이 퇴장하고 자신이 할 일을 하며 더 단단해진다. 새로움, 시작이라는 설렘에 우린 새순만을 응원한다. 뒤에서 묵묵히 자신이 한 일을 봐달라도 하지 않는 헌순이 이를 돕는다는 사실도 잊은 채. 모두 새순이 이뤘다는 착각으로 말이다. 


  나도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최근에 책을 묶어냈다. 많은 분들이 내 시작을 축하해 주셨다. 나는 받기만 했다. 새순처럼. 글 쓰는 순간부터 많은 분들에 도움을 받았다. 글 쓰는 순간순간, 퇴고하는 순간순간, 책이 나와 많은 이들에게 가는 모든 순간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왔다. 새순과 헌순이 말을 걸어 옛 기억을 꺼내놓는다. 대학 입학 순간, 대학원 입학 순간, 직장 취직 순간. 난 늘 새순이었다. 받기만 하는 새순. 헌순을 모르는 새순. 헌순이 준 에너지를 모르는 새순. 

  

  힘든 고등학교 생활을 뒤로하고 대학에서 즐기며 공부하라는 응원이 떠올랐다. 이제는 진정한 연구자로 거듭나라는 격려가 생각났다. 배운 일들을 세상에 이롭게 펼쳐 나아가라는 지지가 기억났다. 모든 이들의 힘을 한 껏 받은 나는 내가 이뤘다 생각하며 걸어갔다. 새순과 헌순이 건넨 이야기에 생각이 자라났다.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향했다. 생각을 거두고 집으로 향했다. 생명력을 몸에 가득 채운 채. 즐거운 산책이 건넨 묵직한 이야기를 글로 몇 자 적어둔다. 글의 얼개를 짜고 나니, 이제는 산책 시야가 넓어진다. 보이지 않던 일을 알게 하고, 보이지 않는 곳까지 짚어간다. 화려한 꽃만 보지 않고, 새순이 올라오는 것만 보지 않으리라. 시선을 아래로 해 그곳에 있는 잎을 보리라. 자세히 들여다보며 그 뒤를 받여주는 헌순을 보리라. 한때 새순이었든 헌순을 기억하리라.


  화창한 날 다음 산책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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