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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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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May 24. 2023

성스러운 장소에 가끔 가는 이유.

바라는 건 없고요. 무거운 짐만 부탁드립니다.

성스러운 장소에 가끔 가는 이유.


최근에 결혼식을 갔다. 성당에서 이뤄지는 결혼식이다. 절차가 꽤 길고, 복잡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체험은 처음이었다. 부모님과 인사하고, 지인과 인사하며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압도하는 공간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기다렸다. 신부님이 들어오시고, 절차가 시작했다.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한 시간이 훌쩍 넘고 나야 식이 끝났다. 


가끔 성스러운 장소를 찾아간다. 우연히 가기도 하고, 마음을 먹고 가는 날도 있다. 종교와는 무관하게 성당이나 사찰을 편하게 찾는다. 행사를 하는 날이 아니라면, 참 고요하다. 사찰은 자연과 함께 있으니, 새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나무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니 마음이 고요해진다. 산책하는 순간이 명상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성당도 비슷하다. 압도적인 공간에 들어가게 되면, 마음은 겸손해지고, 의자에 앉아 성스러운 공간을 지긋이 바라보게 된다.


사찰에서는 간단하게 절을 해 인사를 드리고, 성당에서는 가만히 앉아 고개를 숙이고 마음으로 인사를 드린다. 길게 있지 않고 짧게 머물다가 간다. 무언가를 바라진 않는다. 내가 소망하는 일이 되어 달라는 기도도 하지 않는다. 바쁘신 분들이시니, 내 소망을 들어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민망해서다. 또, 나보다 더 급박한 도움이 필요한 분을 찾아 가시는 일도 바쁘시리라는 생각도 크다.


그래도 가면 꼭 하는 일이 있다.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을 내려놓고 가는 일이다. 성스러운 장소를 주관하시는 그분은 힘이 세다고 한다. 정말 그렇다면,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짐을 내려놓는 일은 괜찮지 않을까 해서 조심스럽게 내려놓는다. 듣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내가 내려놓고 가도, 아무런 말 없이 선선히 나를 보내주신다.


그렇게 짧게라고 공간을 느끼고 나오면, 마음이 가볍다. 어떤 날은 날아갈 듯 가볍기도 하고, 어떤 날은 여전히 무겁기도 하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종교와 무관하게 성스러운 장소를 가끔 가는 이유는 힘센 그분에게 짐을 부탁드리고 싶어서다.


바라는 건 없고요. 무거운 짐만 부탁드립니다. 


어떤 종교에도 독실하지 않다. 절을 가는 일도 있고, 성당에 가는 일도 있다. 갈 때마다 그분들에 무언가를 이루어 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운이 좋게 된다 하더라도, 유지할 힘이 없는 내가 받는 일이 두렵다. 편안한 장소에서 그분들에게 짐을 부탁드리는 일뿐이다. 


우린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장소와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찰이 될 수 있고, 어떤 분에게는 성당이 될 수 있겠다. 어떤 분이든 간에 그러한 시간이 있길 바란다. 바라는 것이 없이 단지 마음을 무겁게 하는 짐을 내려놓는 시간이 마음을 편하게 하리라.


기회가 되면, 가까운 곳에 있는 성스러운 장소에 찾아가려고 한다. 마음을 무겁게 하는 짐을 그분께 부탁드리고 싶어서다. 오래도록 긴 기간 동안 많은 짐을 들어주시는 그분께 감사하다.



한 줄 요약: 이뤄달라는 마음이 아니라 짐을 맡기러 갑니다.



(좌) 결혼식이 치뤄진 성당, (우) 가끔 찾아 가는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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