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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May 21. 2023

제 마음에는 두 개의 비석이 서 있습니다.

이제 은혜의 비석만 쓰려고 합니다.

제 마음에는 두 개의 비석이 서 있습니다.


고대 시대, 아니 역사 이전의 시대에서부터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돌에 새긴다. 단단한 돌에 어렵지만 새겨놓으면 오래도록 남는다. 몇 만년을 뛰어넘어 그림이 남아 있기도 하고, 몇 천년 전의 일이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기록을 품고 있다. 본능일까? 유명 명소에 가면 그렇게 자기 이름을 새기나 보다.


나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일을 돌에 새겨 놓았다. 마음에는 두 개의 비석이 서 있다. 하나는 원한의 비석이고 다른 하나는 은혜의 비석이다. 몇 해 동안은 원한의 비석에 이름과 상황이 빼곡하게 적어두었다. 은혜의 비석은 먼지가 쌓여 있었다.


바쁘게 살며 은혜를 입은일 없는 듯 살았다. 삶이 거친 파도를 만나고, 누가 내 배에 구멍을 냈는지 악다구니 쳤다. 다행히 비석이 있는 마음이라는 마을에 들어서면, 원한 비석에 가 이름을 새겨둔다. 오래도록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으리라 다짐한다. 기회가 온다면 무슨 일을 저지를 것처럼. 원한의 비석이 가득해질수록 마음은 흉흉해졌다.


오래도록 공부하고, 회사를 다니다 이제는 다 타버리고, 또 다른 원한 비석이 필요할 만큼 불편한 마음이 커졌다. 무서웠다. 살기 위해 스스로에게 안식년을 주었다. 파도를 그만 타고 마음에 앉아 내 생각 정원을 다듬고, 키워내고 집을 짓어두고 있으니, 많은 분들이 오간다. 마음의 여유 덕분일까? 비석을 가만히 보게 되었다.


내 일상을 바라보니, 쉽게 만들어진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낀다. 평범한 삶을 만들기 위해서는 참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먼지를 입고 있는 은혜 비석. 당연하다고 생각한 이들의 이름이 빠져있다. 먼지를 걷어내고, 정신을 차려 빠진 이름을 새긴다. 빛을 잃어가고 있는 은혜 비석이 눈이 부시다.


이제는 은혜 비석에만 이름을 새기리라.


이제는 은혜 비석만 새겨두리라.


마음에는 오래 기억하기 위해 비석을 둔다. 나에게는 은혜의 비석과 원한의 비석이 있다. 우리 삶이 늘 평안한 길만 있을까? 사고이든, 의도이든, 가끔은 세게 부딪친다. 가끔은 강한 원한이 마음에 아로새겨진다. 그럼 우리가 그 원한을 갚을 수 있을까? 어떤 방법으로 원한을 갚을 수 있을까?


사적 복수가 철저하게 금지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욕을 하고 험담을 하는 일뿐일까? 그래서 그 일을 하면 어떻게 될까? 나를 갉아먹는 일이 된다. 원한 비석이 흉흉한 빛을 내고, 마음을 어둡게 하는 일이 된다. 원한을 준 이는 벌써 잊고, 가버리고 없다. 나만 파괴되는 일이다.


나를 해코지 한 이들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거나, 다른 세상에서 응당한 값을 치른다는 이야기를 못하겠다. 온갖 나쁜 짓을 하고도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누가 봐도 착한 분이지만, 시련을 겪는 이들이 예나 지금이 나 있다. 원한과 나쁜 짓을 한 이들이 벌을 받으면 하는 마음은 있지만,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 늘 마음이 불편하다. 불편한 마음이 형태를 만드니, 나에게는 원한 비석이었나 보다. 원한 비석을 보고 있으니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원한 비석은 다른 누구도 아니, 나부터 파괴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원한 비석이 아니라, 은혜 비석만 키우리라. 다른 무엇도 아닌 나를 위한 일이다.



한 줄 요약: 당신 마음에는 어떤 비석이 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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