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나 자신.
내가 편안히 물러가 쉴 곳.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 전성기를 이끈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다. 그는 별명이 있는데, 바로 철인황제다. 황제가 아니었다면, 아마 철학자로 평생을 살아갔을 사람이다. 생각을 다듬고, 경계해야 할 일을 고민하며, 삶을 대하는 태도를 정하며 살았다. 당연한 수순일까? 그는 글도 썼다. 전쟁터에서도 쓰고, 틈 없는 국정 속에서도 글을 썼다.
철인황제가 쓴 글은 2,000년은 견디며 지금 우리에게 전해진다. 오랜 시간을 넘어 살아남는 글은 의미가 있다. 고전은 괜히 고전이 아니다. 지금처럼 글을 남기는 일도, 책을 만드는 일도 엄청난 공력이 들어가는 일이다. 사람이 필사를 해야 하고, 종이가 아니라 양과 소가죽에다가 글을 새겼다. 읽어보고 가치가 있어야 한다. 다음 세대도 기억해야 한다고 판단되어야 살아남는다. 2,000년이 넘는 세월을 견딘 글이 바로 <명상록>이다. 2,000년 전이 아니라, 얼마 전 우리 상황을 보고 이야기하는 듯 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또, 제국을 이끌어가는 황제가 겪는 문제나, 우리가 겪는 문제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피어나기도 한다.
위치와 시대에 무관하게 우리가 겪는 생각은 비슷한 모양이다. 아침에 침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적어두기도 했으니 말이다. 마음에 남는 문장도 많았고, 필사해 둔 문장도 참 많았다. 그중에 기억이 남는 문장이 있다. 휴식에 대한 이야기다.
긴 문장이라 뜻이 어긋나지 않게 짧게 하면 다음과 같다. (혹시 원문이 궁금하신 분은 <명상록>, 현대지성 68 페이지, 2번째 줄 확인)
"사람들은 시골이나 해변이나 산속에서 혼자 조용히 물러나 쉴 수 있는 곳을 갖기를 원하고, 너도 그런 곳을 무척 그리워하곤 한다. (중략) 사람이 모든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나서 고요하고 평안하게 쉬기에는 자신의 정신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
내가 편안히 물러가 쉴 곳은 멀리 있는 곳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이라는 황제의 충고.
한갓진 시골, 평안한 해변, 조용한 산속에 혼자 있다고 우린 정말 조용히 물러나 쉴 수 있을까? 이상에 가까운 장소에 갔더라도, 근심과 걱정이 한가득하다면, 그곳이 물러가 쉴 곳일까? 황제는 그 점을 지적했다. 그리워한 그곳에 가더라도, 내 마음에 근심이 있다면 쉬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10년 공부하고, 2년 직장생활을 했다. 그때 아무도 없는 곳으로 물러나고 싶었다. 고요하게 쉬고 싶었다. 몸도 마음도 다 태웠기에 간절했다. 스스로에게 안식년을 주었다. 짧게 여행을 가도, 일을 하지 않고 쉬어도 근심, 불안은 모양만 바뀌어 내 앞에 놓였다. 물러났지만, 내 마음은 소란했다.
근심과 걱정이 없는 상태로 내면을 유지할 수 있을까? 짧은 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무리 편안해 보이는 분들 보더라도, 한 발짝 들어가 보면, 문제가 있고 걱정이 있다. 내면으로 물러나 휴식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한참 했다. 마음에 걱정과 근심을 가진 채로 휴식할 방법을.
불안한 마음을 쥐고는 짧은 방황을 멈추고 돌아왔다. 황제가 내 귀에 속사귀는 듯했다. 내가 할 일을 찾았다. 근심을 인정하는 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존재와 걱정은 뗄 수 없다. 인정을 하는 것만으로도 편해진다. 지금까지 난 불안도 걱정도 바로 보지 못했다. 빛이 만든 그림자로만 봤다. 생각보다 컸다. 바로 보니, 불안은 생각보다 자그마했고, 근심은 생각보다 별게 아니었다.
불안이 작아지니, 마음에 자그마한 여유가 생겼다. 그 여유 속에 내 휴식처를 얼른 만들었다. 시작은 매우 작았다. 그곳에서 근심으로 끄달려 가는 마음을 멈출 책을 읽었다. 솔직한 내 마음을 꺼내어 내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조금 거친 공간에서 걷는 산책을 시작했다.
황제의 글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시대를 넘어선 우리 모두의 고민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2,000년을 넘는 그를 불러와 대화를 했다. 그가 말한 내 마음으로 물러나 쉬며 말이다. 오늘도 먼 곳이 아니라 내 마음으로 잠시 물러 날려고 한다. 그를 다시 불러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한 줄 요약: 내가 물러가 쉴 곳은 바로 나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