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 없어도 딱 맞는 앙상블.
독서모임은 잼 세션이다.
독서모임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은 마음에 있는 방 하나가 가득 찬다. 이름표는 없고, 책 읽기가 힘들 때, 글쓰기가 힘들 때 그 방에 가서 에너지를 충전한다. 책 친구들과 나눈 문장이 독서를 밀어주고, 책 친구들이 건넨 질문이 글감이 되기도 한다.
소중한 독서모임이 있으니, 다른 독서모임은 어떤 활동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독서모임 주최자를 위한 안내서 읽었다. 책이 소개하는 활동은 흥미진진했다. 독서모임과 여러 활동이 이리저리 합쳐지니 재미있는 모양이 있었다. 기억에 아로새겨진 활동은 '도서관 산책'이다. 독서모임을 도서관에서 한다. 자기 책을 가져와 읽기도 하고, 도서관을 걷다 우연하게 만난 책을 읽기도 한다. 책을 읽고 나서는, 산책을 한다.
책과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산책이라는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함께 할 수 있으니, 참 좋아 보였다. 마음이 잘 맞는 책친구들과 언젠가 함께하리라 생각하며 마음 잘 보이는 곳에 크게 적어 놓아두었다. 또 다른 형태의 독서모임은 넘어야 할 울타리가 있다. 발제문을 준비하고, 미리 책을 읽어와야만 한다. 한 권의 책을 깊게 읽고 마음의 준비를 해 오니, 깊고 넓은 책 읽기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다.
책은 독서모임의 위기도 그려놓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불협화음으로 모임이 깨지기도 한다.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이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하기도 하고, 너희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분석할 테다 하며 팔짱을 끼고 듣는 사람이 있다. 또, 여기가 오직 새로운 사람을 만나겠다며 독한 향수를 뿌리고 내놓고 자기 자랑만 하는 분도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누가 누가 더 불행하냐를 경쟁하기도 한다.
다양한 형태의 모임을 보고, 다채로운 분들 모임원을 보고 있으니 난 무척 운이 좋은 사람임을 확인한다. 서로 마음이 맞아 종이 한 장 없어도, 다른 형태의 모임을 하지 않아도 물 흐르듯 진행된다. 누구도 불편하지 않게 서로를 배려하며 하는 독서모임. 내가 몸을 담고 있는 모임을 보고 있으니 즉흥적이지만 조화로운 재즈가 떠올랐다.
잼 세션 (Jam session). 재즈에서 나온 단어로 재즈 연주자들이 악보 없이 하는 즉흥 연주라고 한다. 재즈의 탄생을 보면 악보가 없고, 즉흥적으로 부르는 일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미국에 정착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그들이 언제 악보를 펴내고 음표를 찍고 있을 수 있었을까? 한이 담긴 그들의 노래에는 그때, 그대 힘든 마음이 담기고, 곁에 있는 이들의 마음을 살펴가며 부르는 노래가 바로 잼 세션이 아닐까?
우리 모임을 재즈로 만들어 볼까? (글에 가장 큰 장점은 단 한 문장으로 내가 만들어 놓은 무대로 읽는 분들을 초대할 수 있다)
1930년 뉴욕. Starry garden`s Jazz Club. 화려한 전광판 앞에는 오늘 노래를 부를 이들 얼굴이 여럿 박혀있다. 자신의 얼굴을 보며 어깨를 으쓱하고, 우리 팀은 클럽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향한다. 직원이 어서 오라고 반긴다. 계단을 따라 내려간 곳에는 수백 명의 사진이 우리를 맞이한다. 사진 가장 위에는 "명예의 전당"이라는 글귀가 크게 박혀있다. 우리 입에 오르내렸던 멋진 책의 작가들이다.
북적이던 소리는 우리를 보자 잦아들었고, 눈빛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무대 위로 올라갔다. 각자가 가져온 검은색 가방에서 책이라는 악기를 꺼내고, 앉아 본다. 시작을 알리는 전형적인 멘트를 날리며 서로의 눈빛을 확인한다. 앞에 있던 마이크를 악기 주둥이 쪽으로 당기고, 악보받침대는 한쪽으로 치운다.
신나게 첫 음을 떼자 친구들이 따라오기도 하고, 따르던 친구들이 치고 나가기도 한다. 짧은 시간이 흐르자 듣기 좋은 음으로 맞아 들어간다. 앙상블. '함께, 동시에, 한꺼번'에,라는 프랑스 단어가 내 앞을 휙휙 자나 간다. 서로가 내는 음을 피해 가기도 하고, 서로의 음을 밀어준다.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 잼 세션이 완성되고, 마음은 벅차오른다. 지금까지 한 어떤 노래와도 같이 않은 새로운 노래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잼 세션은 마음으로 통하는 것이다. 발제문이 하나 없어도 책 이야기로 가득 채울 수도 있고, 새로운 생각이 잠시 부딪치며 다듬는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이 태어난다. 준비 없이 각자의 마음을 편히 나눌 수 있는 공간. 바로 독서모임이다.
심야 책방의 문을 여니, 여긴 재즈 클럽이다. 모임원들은 어제와 다른 악기를 들고 왔다. 눈빛을 맞추며 신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색하지 않게 따라오고, 오늘 컨디션이 좋은 이를 환하게 빛나도록 음을 맞춰간다. 나는 이번주에는 형식 없는 독서모임을 기다린다. 이번에는 어떤 노래를 만들게 될까? 아 이름이 없던 그 방에 이름을 하나 붙여 줘야겠다.
"심야책방`s Jazz Club"
덧붙임
형태가 없는 자유로운 독서모임도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