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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Jun 08. 2023

바둑 명인 조치훈 9단이 가진 버릇에 대하여.

대화할 때 가진 버릇: 입 막기

바둑 명인 조치훈 9단이 가진 버릇에 대하여.


바둑에 관심이 있다. 마음으로 따르는 분들은 여지없이 하시는 놀이라 그렇다. 거기다, 최근 <더 글로리>에서 바둑이 나오니, 잊혀있던 바둑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반복이다. 커진 관심으로 바둑을 하다, 이내 시들해진다. 커진 관심은 바둑을 하는 것으로 가지 않고, 바둑에 서려있는 이야기로 옮겨간다. 기억에 남았고, 지금도 나에게 영향을 주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바둑 고수가 가진 버릇이다.


조치훈 9단. 바둑 세계에 전설 중 한 명이다. 11살에서 12살이 넘어가기 직전에 프로기사가 되었다. 큰 대회에 우승을 했고, 10년 동안 챔피언으로 남았다. 바둑 기사로 받을 수 있는 모든 영예를 가슴에 주렁주렁 달았다. 기성, 명인, 혼인보, 천 원, 왕좌, 기성, 십단...


어린 나이에 입단한 그는 가히 하늘이 내린 재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빠른 머리는 빠른 착수로 이어진다. 날랜 바둑은 치열함으로 이어진다. 그는 싸움을 즐기고, 처절하게 전투해 승리를 차지한다. 빠르다는 성급하다와 가까이 있다. 아무리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 하더라고, 성급한 착수는 실수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빠른 생각을 잡아 둘 수 없으니, 행동을 제한한 모양이다. 그는 팔짱으로 생각을 잡아두었다. 돌을 놓기까지 팔짱을 풀어내는 단계를 두어 성급한 착수를 막고자 했다. 실수가 줄었을까? 결과만 보자면, 그는 큰 성공을 한 바둑기사다. 자그마한 버릇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그가 남긴 버릇이 나에게도 와닿았다.


대화할 때 가진 버릇: 입 막기


난 말이 많은 편이다. 생각이 빠른 편이다. 말이라는 돌을 빠르게 상대 앞에 둔다. 난 대화를 하면 끝까지 듣는 법이 없었다. 상대가 하는 생각을 짐작하고 말 허리를 자르고 들어간다. 상대 생각을 잘라 편집해 내 의견을 말한다. 아마 유쾌하게 대화를 하고 싶은 상대는 아니었으리라.


지금 생각해 보면, 성급한 말의 착수는 실수를 남겼으리라. 누군가는 내 말에 상처를 받았을 테고, 누군가를 나에 대한 오해를 키워냈으리라. 생각하지 못한 치열한 말로 싸움을 즐기는 사람으로 그들에게 남지 않았을까? 조치훈 이야기는 한참은 내 마음에서 돌았었다.


조치훈 9단의 팔짱이 나에게도 필요했다. 무엇이 좋을까? 고민 끄트머리에 도착한 곳에는 '입 막기'다. 상대에게 몸을 기울이고 입을 막고 눈과 귀를 온전히 상대에게 머물게 한다. 말을 하고 싶어 입을 달싹거릴 때 입을 막는다. 어색하지 않게 턱을 괴며 손가락으로 막는다. 말을 하고 싶을 때는 손을 내리는 단계가 필요하다. 성급한 말의 착수가 줄인다. 실수가 줄었을까?


다만, 말을 줄이니 보이는 것이 있었다. 무척 생경했다. 상대의 눈빛, 말소리, 뉘앙스, 행동 하나하나가 의미를 건네고 있었다. 그들이 말로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나씩 읽어내려 노력했다. 쉽지 않다. 지금도 어렵다. 난 말하고 싶을 때마다 입을 막아본다.



한 줄 요약: 생각을 바꾸는 일이 어려우니, 행동을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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