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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Jul 01. 2023

한명회가 허허 거리며 웃는 이유.

날 믿는 사람.

날 믿는 단 한 사람.


  옛날 드라마를 가끔 본다. 이번에 보기 시작한 드라마는 <한명회>다. 1994년에 방영한 드라마로 한명회가 주인공이다. 세종대왕이 승하하고 계유정난을 거쳐 갑자사화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다. 한명회는 그야말로 한량이다. 조선의 개국 공신이지만 관직에 나가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밥벌이를 하는 것도 아니다. 늘 허허 웃으며 처럼 다닌다. 한량의 웃음소리 사이에 있는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밥벌이를 하지 않는 사위. 장모님이 마뜩잖게 보리라. 돈을 벌어오지도 않으니, 딸이 친정에 와 쌀을 빌려가고, 옷감을 빌려가는 일이 잦으니 이 또한 좋은 마음으로 볼 수 없었을 테다. 날을 잡아 사위인 한명회를 혼내려 오셨나 보다. 인상을 구기고 들어서 사위를 호통 치며 부른다. 친구와 대화를 하고 있다, 장모님이 오라는 소리에 웃으며 나선다. 돌아보며 친구에게 한마디 한다.


  "빙모님에게 회초리를 맞고 오겠네. 하하하"


  말로 회초리를 들고 으르렁 거리고 있는 장모. 웃으며 들어가는 사위. 사위는 여전히 웃으며 걱정 말라한다. 사람은 오늘만을 보고 사는 일이 아니라, 찬란한 내일을 보며 산다고 한다. 지금 이렇게 있다고 계속 그럴 일 없다고, 회초리를 눙치며 크게 웃는다. 어떤 근거도, 어떤 증좌도 내놓지 않고 말한다. 때마침 그를 구하려고 한 듯 누군가 급하게 찾는다. 


  대책 없는 사람, 답답한 사람으로 보였다. 한명회 나이는 36살. 공신 이름으로 관직도 마다하고, 당시 대단한 선생에게 인정받은 그는 과거도 보지 않는 그는 어두운 터널 속에 있는 듯 보인다. 그는 내일에 빛이 오리라 말한다. 장모는 자신의 말이 먹히지 않으니 장인어른을 보냈다. 장인은 그 당시 이름이 알려진 재야 학자라 한다. 그가 키워낸 제자들이 중요한 관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사위를 비롯해 모든 이들을 불러 모은다. 난 강한 회초리라 나오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장인은 손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사위에게 사과한다. 강성인 장모가 와서 한 말을 다 잊으라 한다. 딸에게는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날아오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니 아무 말하지 말라 한다. 손자들에게는 너희 아버지는 판서 따위가 아니라 정승이 되어 나라를 경영하리라 이른다. 웃으며 사위에게 따스한 눈빛 한 번 맞추고 간다.


  그는 세조부터 성종까지 왕을 가장 높은 자리에서 보좌한다. 정말 말 그대로 되었다. 구국이라는 최고의 영예까지 받아 안게 된다. 처음에는 무엇을 보고 아무런 증거도 내놓지 않는 그를 믿은 것일까? 그는 칠상 둥이라는 놀림을 받고, 변방에서 벼슬이라고 인정도 받지 못할 궁지기를 했다. 무엇을 보고 그의 미래를 내다본 것일까? 아니 그는 무엇을 생각하며 늘 허허 거리며 웃고 다녔을까?


  가끔 난 쪼그라든다. 최근에 친구를 만났다. 모든 이들이 인정한 직업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감이 넘친다. 그의 옆에 있으면 눈이 부시기까지 하다. 경력이 쌓여가듯, 마음도 커져 보이는 그 옆에서 난 작아진다. 비교하려고 하지 않고, 그를 위해 진심을 다해 박수를 친다. 그래도 압력은 높아졌다. 버티던 자존감이 찌그러졌다. 


  한명회를 따라 하고 싶다. 무엇이 그를 두려움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곰곰 생각하다 희미한 이유가 떠올랐다. 두 사람이 그를 믿고 있었다. 하나는 자기 자긴이고, 다른 하나는 선생님이자 장인어른. 그는 생각한 바가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테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음에만 품고 있을 큰 뜻. 커다란 뜻은 누구와도 비교할 필요가 없다. 자신에게서부터 시작했으니 말이다. 아마 스스로를 위로하지 않았을까? 강태공은 때를 만나기 위해 70년을 기다렸으니, 나는 별일 아니라 믿었을 테다.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 자신을 믿은 것이다.


 거기다, 그는 축복받았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장인어른이다. 많은 학생을 지도하고 지켜본 장인은 그를 알아보고 기다렸을 테다. 훌륭한 선생님은 강한 인내심을 가지고 학생을 기다리는 분이 아닐까? 그가 대단한 스승인임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웃음은 바로 그 믿음에서 왔다. 쪼그라든 마음을 가만히 보다 바람을 불어넣었다. 비교에서부터 오는 바람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불어오는 일에 귀를 기울여 만든 바람을 넣어본다. 내 마음에 품은 작은 뜻을 키워본다. 나를 믿는다는 말을 되뇌어본다.


  마음이 조금 커지니, 주위가 보인다.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믿는 사람이 있다. 그들이 있으니 나도 웃어보려고 한다. 별일 아니라고. 허허허 오늘 이렇다고, 내일도 그럴 일 없다고. 



사진 출처: KBS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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