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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Jul 12. 2023

평생 공부하는 일에 대하여.

가장 오래도록 할 수 있는 취미.

평생 공부하는 일에 대하여.


  엔진 오일 교체 시기가 넘었다. 갑작스럽게 지방으로 가는 일이 생기고, 시간의 틈이 없었다. 겨우 시간을 내어 단골 카센터로 갔다. 오래도록 다닌 카센터를 가면 여름에 사장님은 비슷한 자세로 같은 자리에 계신다. 카센터 사무실 맞은편, 탁 트인 곳에는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다. 바람이 모였다 나가는 곳일까? 그곳에는 늘 시원한 바람이 분다. 내 차가 들어서면, 사장님은 밝은 웃음으로 날 맞이하신다.


  "차에 무슨 문제 있어?"


  엔진 오일 교체 시기가 되어 왔다는 말을 건네면, 사장님은 시원한 음료를 우선 주신다. 말을 하시며, 군더더기 없는 행동으로 차 정비가 시작된다. 난 곁눈질로 사장님이 읽고 있던 책을 본다. 넓은 시야를 가지신 사장님은 내 눈을 알아차리시고는 책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이번에 읽고 있는 책은 <논어>다. 책의 역사와 의미로 시작해 인상에 남은 글귀를 일러주신다. 말소리가 잠깐 끊어지셨다. 에어컨 필터를 가지러 가신 모양이다. 난 책상 옆에 서서 책을 펼쳐 조금 읽어 내려가다, 옛날이 생각났다.


  내가 살던 곳은 유교 문화가 무척 강한 곳이다. 갓을 쓰시고 다시는 분이 있고, 고색창연한 중국 말과 글을 읊으시는 분도 있다. 저렇게 까지 하시는 이유가 궁금했다.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만난 건 네 권의 책과 세 권의 경전이었다. 마음에 오래도록 남은 책은 <논어>였다. 공자의 말이 대화로 기록되어 있는 글. 그것만으로는 이유 할 수 없어 기나긴 해설이 담긴 책들이 많았다. 


  공부까지는 아니고, 읽었다. 2,500년 전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궁금했고, 세월을 넘어 지금까지 영향을 준 이유도 궁금했다. 완전히 해소는 되지 않았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다 좋은 소리 같기도 했다. 카센터 사장님은 그때 나처럼 공부까지는 아니고 읽고 계신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내가 공부하던 순간도 떠올랐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그리고 대학원 6년 동안 공부했다. 인생의 60% 이상이 공부로 채워져 있는 삶이다. 공부는 대부분 지루했고, 힘들었다. 자연스럽게 공부를 왜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한동안 나를 멈춰 서게 하기도 했다. 아! 아주 찰나의 순간처럼 안다는 기분이 가끔 오기도 했다. 


  공부할 분야는 넓고, 깊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문장을 바꿔 '인생은 짧고, 공부할 것은 많다',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았으리라. 지긋한 나이에도 공부를 하시는 사장님을 보면, 나도 공부하며 나아갈 분야가 많을 테다. 공부는 앉아서 수업을 듣는 것만은 아니다. 책을 읽는 일이 되기도 하고, 유튜브를 통해 알아가는 것도 공부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난 역사를 공부하고 있고, 만년필을 공부하고 있으며, 글쓰기를 공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생각이 여기까지 오니, 공부는 일도 아니고, 고통스러운 것도 아닌 취미로 가질 수 있으리라. 사장님도 다른 취미가 아닌 공부를 취미로 가지신 모양이다. 공부를 취미로 한다면, 이 보다 더 길게, 평생 할 수 있는 취미도 없으리라. 


  에어컨 필터를 들고 오신 사장님이 끊어진 말을 묶어 다시 이어가신다. 정비가 막바지에 이른 모양이다. 차를 리프트에서 내리고는 나에게 읽고 있던 책을 건네신다. 고개를 숙이고 감사의 뜻은 전한다. 누군가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공부라고 하면 재수 없을까? 생각만 하고 피식 웃으며 집으로 향했다.



덧붙임

  예전에 썼던 <뭐 하러 걱정까지 가불해>의 카센터입니다. 여전히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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