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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Aug 07. 2023

참호에만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일어서는 일이 두렵긴 합니다.

참호에만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몸도 마음도 다 타고난 뒤, 난 안식년을 가졌다. 10년의 공부는 내 몸을 앗아갔고, 2년의 작장 생활은 마음을 짓밟아 버렸다. 안식년 동안 명함은 없어지고, 무슨 일을 하냐는 간단한 질문에 답하기 곤란하니,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인생이 꼬여간다고 생각하고, 나만의 동굴을 찾다가 파기 시작했다.


  한참을 파고 나니, 그곳은 동굴이 아니라 참호가 되었다. 깊고 길어진 참호 덕분일까? 마음은 안정되고, 몸은 건강해졌다. 고개를 들지 않고, 참호에서만 생활을 했다. 총알이 머리 위에 빗발치지만 나와는 상황 없다 생각하며, 더 깊고 길게 파기 시작했다.


  내가 오갈 수 있는 길을 길어지니, 이제는 여기가 내 세상이라 여기며 지냈다. 시간을 착실하게 가더니, 이제는 1년이 넘어간다. 처음에 지내던 참호는 불편했다. 냄새가 나기도 하고, 어떻게 지내나 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제는 없다. 안온해 더 이상 나가기도 싫은 모양이다. 거기다, 나만 참호를 파고 있는 일이 아니라, 참 많은 분들이 참호를 파고 자신을 지켜내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이 되기도 했다.


  문득, 참호에만 있는 것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자라났다. 여기가 습하긴 하지만, 조금은 지저분 하긴 하지만, 조금은 불편하지만. 예전의 전쟁터보다는 괜찮다는 생각이 나를 참호에 잡아두고 있다. 전쟁터에서 쓰던 총도 이제는 구석 어딘가에서 녹슬어 가고 있다.


  최근 친구들을 만난다. 그들이 사는 곳을 함께 둘러보고, 밥을 먹으며 옛날 우리가 함께 하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때로는 앞으로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들의 삶은 전쟁터의 병사로 급박한 환경을 보기도 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를 두고 이야기 나누기도 한다.


  이야기를 한참을 나누고 다시 내가 머물던 참호에 돌아왔다. 잊고 있던 전쟁터에서 나와 함께 누비던 총을 꺼내어 잘 닦아 놓는다. 입고 있던 복장도 다시 털어서 잘 보이는 곳에 두고 바라본다. 참호는 꼭 필요하다. 전쟁터를 다니다 힘든 순간을 쉬어가는 마음의 공간은 필요하니 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이 커진다.


  내가 만든 참호에는 정원과도 연결되어 있다. 한참을 거기에 머물다, 다시 내가 돌아가야 할 전쟁터를 찾아본다. 내가 만든 세상인 참호에만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용기를 내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야만 하지만, 아직도 주저된다. 총알이 빗발치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 용기를 꾹꾹 눌러 담아내고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전쟁터가 있으리라. 누구나 자신만의 참호가 있으리라. 한 곳에만 있을 수는 없다. 전쟁터로 나가는 용기도 필요하고, 자신만의 참호를 만드는 용기도 있어야만 하리라. 곧 가득  용기를 가지고 참호에서 고개를 들어보려고 한다. 전쟁터에서 자신만의 전투를 치르고 있는 분들에게 응원을, 용기를 내어 자신의 참호를 파고 계시는 이들에게 그대가 혼자가 아님을 알려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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