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용기가 크게 없다. 아니, 부당한 일을 보거나, 잘못된 일을 보더라도 쉬이 지나가는 편이다. 나에게 직접 피해가 없다면 조금은 불편한 마음은 있지만 지나간다. 지나갔지만, 불편한 마음이 여전하면 '합리화'라는 녀석이 와 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가버린다.
우리 집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다 보면, 부당한 일을 본다. 장애인 주차장에 비 장애인 차가 주차되어 있는 일. 자주 보니, 이제는 무던해진 것인지 아니면 합리화가 내가 생각하기도 전에 그냥 지나가라고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또, 공용 전기에 자신의 전기차를 충전하는 모습도 보게 된다. 불편하지만 눈을 질끈 감고 지나간다.
누구나 볼 수 있고, 언제나 곁에 있는 불편한 상황에서 난 용기를 내어 개선하려 하지 않는다. 최근 브런치 스토리에서 글을 하나 만났다. 미션임파서블이 개봉했고, 한산한 때에 영화를 보신 모양이다. 누군가 조용히 휴대폰으로 영화를 찍었다. 작가님은 그 광경을 보고 커다란 소리로 '실례합니다'를 외쳤고, 그는 후다닥 영화관을 빠져나갔다.
우연히 부당한 일을 보셨고, 작가님은 그를 쫓아냈다. 어떤 계산도, 어떤 생각도 없이 부당한 상황을 즉각 말 한마디로 해결하셨다. 작가님은 훌륭한 일을 하셨고, 용기 없는 나에게 새로운 생각 하나 가 들어왔다.
작가님은 우연한 기회로 용기를 꺼내 놓는 장면을 마주하셨다. 마음 깊이 있던 용기라는 녀석이 한번 나와 부당한 일을 한 번에 해결하셨다. 한번 꺼낸 용기는 다음 용기 내는 요령을 알려주지 않을까? 나아가, 용기를 내는 버릇을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용기"하니 나도 꺼내 놓은 일이 생각났다. 부당한 일에는 아니지만. 나에게 글쓰기가 참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동생이 독립서점을 하는 우연, 안식년을 가진 우연, 브런치 스토리를 알게 된 우연.. 우연이 겹쳐 나에게 용기를 내는 기회가 왔다. 그렇게 글을 쓰는 용기, 글을 발행하는 용기를 빈번하게 내었다. 용기는 용기를 불러와 쌓이니, 용기 내공이 쌓여 지금까지 왔다.
우리 모두에게는 용기가 있고, 그 용기가 발현해야 하는 우연한 기회가 있으리라. 기회가 내가 용기가 정말 있는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 알게 되리라 생각된다. 용기 있는 사람의 시작은 모두 우연한 기회가 아니었을까? 오늘도 우연에 기대어 용기를 내어본다. 시작은 작지만 내다보면 커질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