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과 춘천에서 친구들이 나를 극진하게 대접한 까닭.
뭘 갚아요.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녜요.
친구를 핑계 삼아 여름 여행을 떠났다. 한 명은 대전에, 한 명은 춘천에. 두 번의 여행, 두 번의 대접을 받고 나니 마음이 무척 쓰였다. 고마운 마음을 기록으로 남겨두겠노라고, 마음 서랍에 넣어둔 이야기는 오래도록 머물렀다. 고마운 마음도, 미안한 마음도 섞여서 생각을 맺지 못한 채 오래 서랍에서 날 기다렸다. 먼지를 걷어내고, 조금 써둔 글자를 뒤로 가며 깨끗하게 지우고 다시 썼다.
이른바 '노잼' 도시라고 하는 대전. 당일치기로 했다. 다행히 차는 막히지 않았고, 친구가 불러준 주소로 달려갔다. 여행에다 그의 결혼 소식이 더해지니,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기다리는 예비부부를 생각하니, 덩달아 설레었다. 선물도 고민했다. 처음 만나는 그녀와, 새로운 시작을 용기 있게 한 친구에게 줄 선물.
과하지 않고, 마음에 남을 선물들이 마음 경매대에 올라왔다. 휴게소에서 물 한 병을 사들고 차로 향하니, 경매가 시작되었다. 건강보조식품, 간식, 과일, 커플 잔.... 몇 개가 입찰을 위해 왔다 유찰되고, 폐찰 되었다. 다시 경매대에 올라가려고 하는 선물을 지나쳐 꽃이 들어왔다. 고민하다 낙찰했다. 친구가 알려준 가장 가까운 장소에 적당한 꽃다발을 전화로 주문하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도착한 곳에서 환한 웃음으로 팔을 높게 든 친구가 보인다. 주차 자리를 빼앗길까 뙤약볕 아래에서 날 기다린 모양이다. 땀을 훔치며 나에게 오느라 고생했다고 말하며, 뒤쪽을 가리킨다. 처음 보는 그분과 인사를 나누고, 뒷 좌석에 있는 꽃을 선물로 주며, 앞으로 환한 날만이 있길 바란다고 틀에 박힌 말을 건넸다. 반응을 그야말로 대 성공.
친구는 나를 위해 모든 일정을 준비해 두었다고 한다. 이제부터 운전할 필요 없다고 하며, 내 어깨를 토닥인다. 자신이 일하는 곳, 대전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 이성당까지. 그가 준비한 일정에는 빈틈이 없었다. 그동안 밀린 이야기도 하고, 빵을 사며 그야말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전형적인 드라마도 한 장면을 연출했다. 서로 계산하겠다며 카드를 내밀었고, 난 패배했고, 여기까지 와준 나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춘천으로 떠나는 여행은 판이 컸다. 친구 부부 집으로 초대를 받았고, 게스트 룸까지 정비했다며 1박 2일로 가길 강권했다. 여기도 대전 여행과 마찬가지로 모든 일정은 자신이 준비했으니, 몸만 오라고 했다. 내 환한 마음처럼 도로는 막힘 없이 나를 그들에게로 인도했다. 선물은 미리 준비를 했는데, 도자기 컵이다. 작지만, 컵에 마음이 조금 담기길 바라며 나와 함께 출발했다.
춘천 대형 카페, 우뚝 솟은 소나무 아래에서 바람을 맞으며 그늘 아래로 숨어 들어가 있었다. 약속 시간 10분 전, 그들이 왔다. 대전과 같은 레퍼토리다. 혹시 둘이 통화를 한 것은 아닐까 싶다. 차를 자신의 집에 주차를 하고, 한 차로 움직이자고 한다. 말도 비슷하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며, 이제는 자신을 따르라고 했다.
그들과 함께 간 곳은 말이 많았던 "레고 랜드"였다. 뻥 뚫린 길을 따라가니, 넓디넓은 주차장이 우리를 맞이했다. 주차를 하고도 10분 남짓 걸어가야 한다는 안내 직원 손 끝 방향을 보며 걸었다. 강한 더위도 우리 이야기를 멈추지 못하게 했다. 몇 번의 웃음, 두 가지 주제가 바뀌니 레고 랜드 입구에 왔다. 더운 날에다, 이제는 다 커버린 우리가 온 레고랜드, 재미에 물음표가 떴다, 곧 사라졌다.
아이의 마음으로 얼른 돌아갔다. 앞장서서 간 곳은 드래건코스터. 더위 때문일까? 줄은 없었고, 바로 탑승했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속도를 올렸다. 시원한 바람에 마음은 상쾌해졌고, 아이들이 타는 놀이기구가 나를 방심케 한 모양이다. 멍하니 타다 빠른 속도에 올라 침까지 흘렸다. 내려서 친구 얼굴을 보며 서로 빵 터졌다. 나도, 그도, 입을 통제하지 못한 모양이다.
저녁도 춘천의 맛집으로 갔고, 2차로는 시원한 맥주를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새로 시작한 직장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 계획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날은 어두워졌고, 얼굴을 붉어진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틈없는 친구는 해장하자며 나를 이끌었다. 따스한 국밥이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냈다. 이제는 계산을 서로 하겠노라며 투닥거렸다. 같은 장면, 다른 인물로 사건이 반복되었다. 이제는 가야 할 시간이라며 서로 웃으며 또 보자고 한다. 대전 그 친구와 같은 말로 마무리가 되었다. 와줘서 고맙다고.
그들은 왜 나에게 대접을 해줬을까? '극진히'라는 단어를 붙여도 과하지 않은 그들의 배려. 답을 찾지 못해 글은 매듭이 풀린 채, 서랍에서 먼지를 먹으며 나를 기다린 모양이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들이 목적 없이 베푼 호의에 감사한 마음은 커졌고, 잊지 않고 꼭 갚겠다는 마음만 자라났다.
갚을 수 있을까? 그들이 준 마음을? 마음 정원을 산책하다, 드라마 대사가 한 줄 떠올랐다.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대사다. 이지안 (아이유 분)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장례를 박동훈 (이선균 역) 형제와 이웃들이 살뜰하게 챙겼다. 이지안이 고맙다며 꼭 갚겠다고 말을 하니, 이제철 (박수영 분)이 하는 대사다.
"뭘 갚아요.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녜요."
이기적인 걸까? 아니면 이 기적 같은 합리화로 마음을 편하게 하고 싶은 걸까? 아직도 마음은 모르겠다. 나를 대접해 주고 오히려 고맙다고 하는 마음. 갚지 못하는 이 순간 제철이 한 대사만을 읊조리고, 기다릴 뿐이다. 그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하는 순간이 오길. 그럼 아마 나도 그들의 마음을 알까 해서. 그 시간이 기다려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