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와 샤이니.
환상의 나라에서 모두 행복하진 않습니다.
학교 가까이 사는 학생은 꼭 지각을 한다는 공식(?)이 있다. 말을 조금 바꿔도 뜻이 통하는 문장이 있다. '가까이 있는 에버랜드는 잘 안 가게 된다.' 환상의 나라인 에버랜드에 간 적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가까이 있으니,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생각 덕분에(?) 다른 선택지로 늘 밀려났다.
에버랜드에 갈 이유가 생겼다. 다른 이유를 다 제치고 앞으로 나온 이유. 바로 에버랜드와 샤이니가 콜라보를 했기 때문이다. 여자친구는 15년째 샤이니 월드의 시민이다. 아이돌 평균 수명이 2018년에는 5년 정도에서 지금은 7년으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짧다. 샤이니는 평균을 아득하게 넘여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들을 지지하는 팬도 대단하고, 무탈하게 깨지지 않고 여기까지 온 아이돌 그룹도 대단하다.
그녀와 함께 뜨거운 햇살을 뚫고 에버랜드로 향했다. 여름 에버랜드는 시원한 물을 맞기 위해 온 이들도 가득했다. 에버랜드 정문에서 한참 떨어진 '3 주차장'에 차를 멈춰 놓고는 버스를 탔다. 사람 머리로 빼곡한 버스는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달렸다.
36도를 넘나드는 날씨, 따가운 햇살은 우리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일정을 촘촘하게 짜온 그녀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콜라보 매장이었다. 오늘만 살 수 있는 포토카드를 받아 들고, 샤이니 굿즈를 천천히 살피고 있는 그녀 뒤에서 난 열을 내리고 있었다.
다음은 샤이니 노래가 흘러나오는 어트랙션 (놀이기구)을 타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하드 락스핀' 위로 올라갔다가 빙빙 도는 어트랙션이다. 줄을 서서 기다리니, 익숙한 노래가 들려온다. 샤이니 <hard>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으니 샤이니를 상징하는 하늘색을 담은 분들이 줄을 선다. 뜨거운 햇살에 모두들 인상을 구겨 빛을 피하고 있으니, 하늘 높기 놀이기구가 올라간다.
올라갈 때 비명 내려갈 때 비명. 비명은 2분 남짓 내고는 다음 사람을 태운다. 그렇게 30분 정도 기다리니 우리 차례가 왔다. 더웠던 기운은 날아가고, 긴장이 목에서부터 흘러내려 땀을 앗아갔다. 안경을 벗고 타니 앞은 흐릿했고, 나를 안전하게 지지대주던 땅에서 점점 멀어진다. 천천히 올라가는 의자와는 달리, 마음을 요동 쳤다. 나도 앞에서 타던 그들처럼 회전할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끝났나 싶어 눈을 뜨니, 아뿔싸. 가장 꼭대기다.
눈을 감기도 전에 아래로 회전하며 한참 돌던 그 녀석은 비웃으며 나를 보내준다. 나와서는 주저앉을 뻔했다. 더위와 어지럼증이 함께 왔다. 더위부터 몰아내려 아이스 사파리 버스로 향했다. 여기도 나처럼 더위를 피해 온 분들과 가득했다. 포기하고, 사이니를 상징하는 다이아몬드에 앉았다. 여자친구는 시원한 음료를 사 오겠다면 웃으며 걸어간다.
앉아서 있으니, 하드 락스핀에 두고 온 영혼이 이제야 저 멀리서 오고 있다. 그늘 아래에서 지나가는 이들을 자세히 보니, 얼굴 표정이 제각끼 다르다. 누구는 웃고, 누구는 나처럼 놓친 정신을 찾아 헤매며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환상의 나라인 여기에서도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닌 모양이다.
바이런 경 (The Lord Byron). 제6대 바이런 남작. 조지 고든 바이런 (George Gorden Byron)께서 화려한 옷을 입고는 가지런한 턱수염을 만지며 나타나 내게 외친다.
"기쁨을 얻는 사람은 그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나눠야 한다. 행복은 쌍둥이로 태어났다."
(All who joy would win must share it. Happiness was born a Twin)
귀에 쟁쟁거리는 그의 말에 저는 나눠줄 기쁨이 지금은 없다고 하니, 나를 일으켜 세운다. 난 그에게 짜증이 조금 섞어 말을 건넸다.
"잘생기시고, 지위도 높으신 바이런 경. 당신은 그 기쁨은 너무 많은 여성 분들에게 나눠 준 모양입니다.*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지금 제가 영혼이 놀이기구에서 걸어오고 있거든요."
*바이런 경은 여성 편력이 심했다고 한다.
바이런 경은 글 쓰는 나로서는 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과 같은 존재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밤. 재미로 시작한 이야기가 최초의 흡혈귀 소설이 되고, 돈 주앙이라는 역작을 남기기도 했으니. 작품 보다 먼저 그를 만난 건 하나의 문장이었다.
예수님 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을 종교와 영적 의미로 서술하라는 문제에 "물이 그 주인을 마주하니 얼굴을 붉혔도다." (Water saw its Creator and blushed.)라는 문장으로 신학 시험 최고점을 받았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가 한 말을 삐딱한 마음이 아니라 바른 마음으로 곰곰 씹어고 있었다.
시원한 음료를 가져온 그녀는 내게 건넨다. 우선 빨리 마시라며 재촉한다. 달달하고 차가운 음료가 몸에 있던 더운 기운과 함께 만나니 내 체온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때마침 영혼도 몸에 쏙 들어왔다. 그늘에 잠시 앉아 있자며, 내 옆에 앉은 여자친구가 나를 보며 빙그레 웃는다.
"고마워. 더운데 샤이니 이벤트에도 같이 와주고."
그녀의 목소리가 나눠준 기쁨. 그녀 등에 숨어 있던 행복이 총총 걸어와 내 손을 잡는다. 다음 어트렉션을 타러 가려는데, 뒤에서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거봐 행복은 쌍둥이라니까? 하하하."
환상의 나라에서 잠시 힘든 분들도 이곳에서 나갈 때는 기쁨 이를 손에 잡고 가길 바라며, 다음 놀이기구로 향했다.
덧붙임
에버랜드에서 9시간 동안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