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시간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야.
어머니의 손가락이 휘어지는 까닭.
어머니는 사찰 봉사활동에 열심이시다. 손도 머리도 모두 빠르신 분이시라, 무척 환영을 받으신다. 덩달아 나도 덕을 보는 데, 사찰에 가면 모두들 어머니 아들이냐며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자신이 필요한 자리, 남을 위한 일은 어머니를 밝고, 명랑하게 만들고 있다.
가끔 어머니는 봉사활동을 하며 있었던 일을 알려주신다. 봉사활동의 범위는 넓다. 식당에서 일을 돕기도 하시고, 때로는 신성하고 너른 대웅전을 청소하시기도 한다. 특히 자주 하는 일은 사찰 내에 있는 기념품 가게를 맡아 운영하시는 일이다. 사람이 오가니 이야기가 참 많다. 어머니가 들려주시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궁금한 점을 질문으로 돌려드리기도 한다. 그중에 마음에 턱 하고 걸리는 분이 있었다. 바로 손가락이 휘어진 분 어르신 이야기다.
자주, 아니 거의 매일 사찰에 오시는 어르신이 있다. 어머니 보다 조금은 연배가 높으신 분인데, 2 시간에서 3시간 동안 기도를 드리고는 가신다고 한다. 계절에 관계없이 뽀송하던 옷이 등에는 땀자국이 될 때까지 기도를 하신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가족을 위해 열심히 기도 하리라 짐작하셨다고 한다. 같은 어머니라는 위치 때문일까? 마음이 쓰이셨다고 한다.
어느 날, 기도에 진심인 그분이 가게에 왔다고 하셨다.
"저기... 물 한잔 먹을 수 있나요?"
매일 함께 하던 물통을 깜빡했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얼른 그분에게 시원한 물 한잔을 건네셨다. 물컵을 받아 들려고 뻗은 손을 보니, 세월의 굴곡을 한껏 안고 있었다.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겨우 뚫고 간 나뭇가지 같은 손에게 물은 주셨다.
손가락이 휘어지는 이유는 참 다양하다. 반복되는 일을 하다 보면 휘어질 수 있고, 나이가 어깨에 메어지니 무게를 나눠지던 손가락이 울퉁불퉁해지기도 한다. 백조목 변형이라고 하기도 하고, 단춧구멍 변형이라고도 한다. 어찌 되었건, 일과 세월이 그 원인으로 작용했으리라. 지금은 절을 하고 기도하는 일이 손을 휘어지게 하는 원인이 아닐까?
물을 드시며, 어머니와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아들과 딸이 외국에 가있다고 한다. 아들은 축구를 배우겠노라며 갔고, 딸은 통역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갔다고 한다. 천리만리 떨어진 곳에 내 또 다른 영혼을 보내고 나서는 마음이 헛헛했다고 한다. 자식들을 위해 내어 놓을 지식 한 조각도 없고, 그들을 위해 든든한 응원군이 되어줄 힘센 사람도 알지 못해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그렇다고 돈을 가득 줄 수도 없는 처지에 선택한 일이 매일 그들의 미래가 무탈하길 비는 일이라 했다.
절을 하다 보면, 힘이 부족하면 손가락으로 짚고 일어난다고 한다. 손목이 아프면 자연스럽게 손가락으로 버티며 일어나는 데, 이때 손가락에 압력이 가해지니 휘어지는 원인이 되는 듯했다. 아직은 아니, 앞으로도 모를 부모님의 마음을 가만히 듣고 있으니, 뒤에서 영화 한 편에 어깨를 톡톡 친다. <빌리 엘리엇>
몇 번의 소란, 몇 번의 사건 뒤, 빌리는 아버지에게 춤을 보여준다. 온 힘을 다한다. 아버지는 안다. 아들에게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결국 돈이다. 아버지는 파업을 접는다. 친구들에게 욕을 먹으며 자신의 신념을 접으려 한다. 그때 아버지는 첫째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울며 이야기한다.
"빌리를 위한 일이야. 그 아이는 천재일지도 몰라, 우리는 이미 끝났지만 빌리는 아니야, 빌리를 이렇게 끝나게 할 순 없어. 빌리에게 기회를 주자꾸나."
(It's for wee Billy! He may be a ******* genius for all we know! For ***** sake, We're finished, Son. What choice have we got? Let's give the boy a ******* chance!)
자식인 나는 추측할 뿐이다. 손가락이 휘어지게 기도하는 이유는 아마, 자식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자신에게 남아 있는 조그마한 기회 조각이라고 있다면, 저기 위에 있는 분에게 부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이제 필요 없으니, 그 기회를 자식들에게 주라고.
손가락이 휘어지게 기도를 하시는 분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다며, 일어나신다. 어머니와 어머니는 통하는 걸까? 이제는 자주 오셔서 이야기 나누시고 쉬다 가라고 하셨다고 한다. 요즘에는 자주, 물을 마시고 이야기는 나누신다고 한다. 부모님을 위해 잠시 눈을 감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