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참 좋았다. 지금처럼 넷플릭스, 왓챠, 티빙, 웨이브, 유튜브는 없더라도 친구들과 실없는 소리가 재미있었고, LOL, 배틀그라운드, 피파와 같은 게임이 없었지만 친구들과 노는 건 즐거웠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육성회비*'로 부터의 해방이었다.
육성회비: 학교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하고자 설치한 일종의 학생 납입금 -교육학 용어사전-
그 당시 선생님들도 이유가 있었겠지만, 참 집요했다. 집에 돈이 있을 리 만무했고 학교에서는 육성회비를 가져오지 않은 얘들에게 다채로운 방법으로 받아 내려 노력했다. 돈을 내지 못한 아이들을 교실 밖으로 내보낸다든지, 꿀밤인지 구타 그 어딘가를 넘나들며 때린다든지, 수업시간에 계속 세워 놓는다든지, 돈 대신 몸을로 때우라며 화장실 청소를 시킨다든지. 지금이야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때는 빈번했다. 아니 일상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방학이 되면 그런 모멸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즐거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아침에 등교를 하지 않지만, 우린 늘 비슷한 시간인 8시 즈음에 모험의 출발지인 당나무에 모였다. 오늘은 저 산으로 놀러 가자며 나서기도 하는데, 그땐 여지없이 친구들 등에는 지게가 있다. 나무를 한다는 핑계로 정당하게(?) 산으로 놀러 가기도 하고, 당나무 아래 그늘에서 '오징어 게임'(세계가 아는 바로 그 게임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말뚝박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게임을 돌려가며 하다 이제는 할 게 없을 때, 당나무 아래에 자리를 깔고 눕는다. 다들 새로운 놀이를 개발하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린다. 한참을 굴리다 나온 게 그네다. 높은 당나무에 그네를 걸어서 놀자는 의견에 모두 기다렸다는 듯 동의를 외친다.
자 이제 정해졌으니, 어떻게 그네를 만들 것 인가라는 방법을 의논하기 시작한다. 나라를 구할 듯한 진지함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그것마저 즐거운 놀이였다. 한참을 쑥덕거리다 나온 답은 짚으로 밧줄과 받침대를 만든다는 결론이 나왔다. 당시에 만들어진 밧줄을 구하는 것도 어려웠을뿐더러,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유희를 위해 남아 있는 건 없었다. 그렇게 각자 구할 수 있는 짚을 여기저기서 가져온다.
그럼 이제 다시 시작이다. 짚을 꼰다. 당시에 말하고 손을 놀릴 수 있다면 배우는 게 바로 짚을 꼬는 일이었다. 쓰쓰쓱 도로록하는 반복적인 소리가 난다. 그렇게 7명이 한시간 정도 하자 긴 밧줄이 하나 완성되었다. 다음 걸림돌은 누가 어떻게 걸 것인가이다.
짧은 정적 후 12개의 눈이 나를 향한다. 나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무를 타기 위한 준비를 한다. 허리에 줄을 단단히 매고, 박수를 크게 두 번치며 "악"하며 소리를 친다. 그리고 고쳐 신을 게 없을 고무신을 다시 한번 고쳐 신는 시늉을 하곤, 큰 당나무 밑동을 안고는 후다닥 큰 나뭇가지를 향해 올라간다. 그렇게 가지 하나 두개를 올라가면 어느새 학교를 가는 언덕이 시원하게 보인다. 이쯤이면 되었나 싶었을 때 친구들이 소리친다. "그만 올라가, 줄이나 내려."
허리에 맨 줄을 풀어 굵은 나뭇가지에 걸고는 아래로 내린다. 이제는 설치 끝. 아래에 친구들이 가로대에 묶는 것을 바라보곤 얼른 왔던 나뭇가지를 조심히 밟으며 내려간다. 내려가는게 더 짜릿하다. 내려가니 이미 완성된 그네가 나를 맞이한다.
6명의 친구들은 내 노고를 치하 하 듯, 먼저 타보라는 손짓과 함께 양쪽에 도열한다. "야. 빨리 타 다음은 나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곤 한번 타본다.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시원한 바람이 스치고, 보이는 광경이 변한다. 높이 올라간 그네에서 언덕 꼭대기가 보일 땐 속이 펑하고 뚫렸다. 조금 타곤 친구들에게 자리를 넘기고 옆에 앉았다.
그렇게 우리의 새로운 놀이가 생겼다.
지금 그 시골에 가면 참 지루하다. "휴대폰이 있었으니 망정이지"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휴대폰도, OTT 서비스도, 컴퓨터도 없던 그 시설에도 그는 재미있게 놀았나보다. 가위바위보를 하더라도 친구랑 하면 지금도 재밌있는 걸 보면, 무슨 일이든 친구랑 하면 재미있었다.
지금은 그때 걸었던 그네는 없다. 하지만, 그네를 걸어주었던 당나무는 그 자리에 있어 다행이다.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으니 말이다. 부모님이 그 시절 했던 놀이가 무엇인지 여쭤보자.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거라면 한번 해보자. 나는 동네에 있는 그네를 몰래 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