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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Jul 26. 2023

어머니 주방이라는 섬에 방문했습니다.

<주방 표류기>

어머니의 주방이라는 섬에 방문했습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무척 길어졌다. 스스로에게 준 안식년 덕분이다. 공부를 오래 하며 자신을 태웠고, 조금 남은 조각마저 직장생활을 하며 불타버렸다. 살기 위해 멈췄고, 내가 쉴 수 있게 자리를 내어준 곳이 바로 집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난 집안일을 하나, 두 개씩 확장해 갔다. 청소기를 돌리며 집안 구석구석을 알게 되고, 화장실 청소를 하며 화학약품의 효과를 보며 눈이 번쩍 뜨이기도 했다.


  내 확장이 멈춘 곳은 주방이다. 어머니의 기준으로 정렬되어 있는 주방.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그곳은 마치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느껴졌다. 신성한 그곳을 드나들 수 있던 건 설거지를 할 때다. 먹고 난 그릇을 설거지하는 일은 내가 나서서 했다. 흐르는 물소리와 달그락 거리는 유리 부딪치는 소리에 거실과는 자연스럽게 분리된다. 


  주방을 설거지로 오가며, 요리를 하고 싶다는 은근한 마음이 솟아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오래 공부를 하며 실험을 한 탓일까? 요리와 실험이 참 비슷하다는 생각에 머물고 나니, 도전 용기가 솟구쳤다. 어머니에게 조심스럽게 요리를 하려 한다는 의사를 내 비치니, 어머니는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셨다.


  계란 볶음밥처럼 간단한 요리부터, 최근에는 지코바 치킨까지 도전했다. 몇 번의 요리를 했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반복하는 대사가 있다. 


  "엄마, 이건 어디 있어?"


  언제나 돌아오는 건, 망설임 없는 손짓과 바로 알려주시는 반응이다. 가끔은 어머니가 하시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헤매고 있으면 짧은 한숨으로 짚어주시기도 한다. 요리의 막바지에 이르면 어머니는 평소에 보기 힘든, 하지만 요리에 딱 맞는 그릇을 꺼내 놓고 마무리를 하라신다. 


  내가 몰두한 건 집안일뿐만 아니었다. 글쓰기와 책 읽기. 은퇴 뒤로 밀어둔 글쓰기를 당겨 쓰기 시작했고, 온갖 콘텐츠에 밀려 있던 책 읽기를 했다. 책은 책을 소개하고, 끝없이 펼쳐진 활자의 세계를 뛰어나녔다. 마음에 남는 책도 있고, 흘러가는 책도 있다. 내가 하던 일을 알고 있던 것처럼 다가온 책이 있으니 바로 <주방 표류기>다.


  설거지를 하며, 차단된 소리는 집에 주방이라는 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page 7). 손님을 위해 쓰는 그릇 세트를 제외하고는 단출한 찬장을 보며, 지난 어머니의 고난이 이제는 정리되어 깔끔하게 된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닿았다 (page 48). 책을 읽고 거실에 앉아 주방을 바라보니, 그곳은 어머니의 섬이었다. 


  우리 모두 바빠서 섬에 홀로 있는 어머니를 잃어버렸던 모양이다. 내가 그 섬을 방문하고 요리를 하며 설거지를 하는 이제야 알게 되니 말이다. 우리 모두 바쁘다는 핑계로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았고, 깨끗한 화장실, 빨래, 정갈한 음식이 당연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우리를 먹여 살리시며 섬에 홀로 앉아 몸도 마음도 늙어가셨으리라. 


  오늘도 난 어머니를 대신에, 아니, 이제는 내가 설거지를 하고 요리를 하려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어머니 홀로 있는 섬이 아니라, 내가 가 함께 있는 섬이 되리라. 조만간, 섬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다리도 하나 만들 수 있을까? 우선,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배가 있어야겠다. 난 배를 타고 들어가 오늘 메뉴를 말하리라. 아! 또 찾지 못하는 게 있다.


  "엄마, 이건 어디 있어?"



주방표류기


<주방 표류기> 이런분께 추천드려요!

- 주방이라는 섬에 홀로 있는 분.

- 주방이라는 섬에 있는 부모님을 이해하고 싶은 분.


#주방 #어머니 #이해 #섬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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