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추억을 가져가길 바랄 뿐입니다.
잼버리는 먼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저녁 10시 유튜브를 멍하니 보며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내일 봉사활동 할 수 있겠어? 잼버리가 온다고 해서.."
어머니는 사찰에서 봉사활동을 하신다.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을 지키시기도 하고, 청소를 하기도 하신다. 어머니가 봉사활동을 하는 사찰에서 급하게 요청이 온 모양이다.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들어보니 뉴스에서만 보던 이야기가 가까워졌다.
잼버리 인원 230명이 사찰에 2시간 정도 체험을 하러 온다고 한다. 영어가 가능한 사람들이 봉사활동으로 안내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시고 이제는 사찰에서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시는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겠다고 말하니, 어머니 표정은 한껏 밝아지셨다.
인터넷으로 간단한 회화를 살피고는 내일이 되길 기다렸다. 태풍이 올라오는 탓일까? 아니면, 산속에 있는 절 이기 때문일까? 도착한 사찰에는 더운 기운이 조금 물러나 있다. 봉사 활동을 위해 급하게 모인 5명이 있었다. 급작스러운 잼버리 인원의 방문에 고요한 사찰은 소란스러웠다. 해야 할 일을 분배하고, 체험을 위한 준비가 분주했다. 더운 날씨에 그들을 위한 시원한 물과 얼음, 간단한 요깃거리가 준비되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다시 짚었다. 간단한 안내와 영어로 사찰에 대한 설명을 하는 일이었다. 일정은 오전 10시 30분에 100명 오후 2시에 130명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쓰는 영어 때문에 떨리기도 했고, 처음 보는 분들과 어색하게 있는 일도 마음에 미세한 진동을 줬다. 시간을 착실히 흘러갔다. 10시 30분이 넘어 20분이 지났지만, 감감무소식.
봉사활동을 담당하시는 분이 오시더니 안타까운 말을 전하셨다. 버스가 없어서 오전 일정을 취소되었고, 오후에 230명이 모두 온다고 한다. 이야기 끝에는 버스가 조율이 되지 않으면 완전히 취소될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르니 1시 30분까지는 대기해 달라는 부탁.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대기를 했다.
시간이 갈수록 태풍 때문인지 날씨는 어둑해져 갔다.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도 비슷하게 채도가 점점 낮아졌다. 사찰의 정갈한 점심을 먹고 다시 대기가 시작되었다. 1시 30분이 갓 넘어가니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담당자께서 오셨다. 3시 20분에 도착한다고, 마음의 준비를 해달다고 하셨다.
3시가 조금 넘어 버스가 속속들이 도착했다. 같은 복장을 입은 이들이 줄지어 내리더니, 자신의 조를 찾아 질서 있게 줄을 선다. 우리의 안내에 따라 계단을 올라간다. 그들에게는 생경한 한국식 불교 소개가 시작되었다. 절을 하는 방법을 간단히 배우고, 손목에 차는 염주를 하나씩 꿰었다. 어설프게 하는 이들을 위해 옆에 앉아서 도우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30분 남짓 염주 만들기가 끝나고는 마지막 일정이 시작되었다.
불교의 4가지 물건을 치는 행사다. 범종, 법고, 목어, 운 판. 낮에 울리는 종소리는 사찰을 웅장하게 만들더니, 신비롭게 했다. 물을 마시고, 사찰에서 준비한 떡을 먹던 이들은 잠시 멈추고 종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종이 무슨 의미 있지 묻는 이에게 더듬거리는 말로 불교 의식의 시작을 알리고, 신도들을 깨우치는 소리라 설명했다. 제대로 전달되었을지는 의문이지만, 소리를 듣던 이는 대웅전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나에게 감사하다고 하며 자신의 조를 향해 걸어갔다.
버스로 걸어가는 이들에게 인사를 하며, 시원한 생수를 하나씩 건넸다. 어색한 발음으로 연신 감사합니다를 말하는 이들에게 웃음을 지으며,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뉴스에서 소란스러운 잼버리가 나에게 온 일이 참 신기했다. 그들은 어떤 체험을 하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까? 더듬거리는 말로는 충분히 주고받지 못했다. 그들의 표정으로 짐작할 뿐이다.
그들을 태운 버스는 돌아가고 난 내 차로 돌아갔다. 염주를 만들던 행사 중 스님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우리 모두 특별한 인연으로 이곳에 모였다."
날 스쳐가는 수많은 인연에 이유가 있을까? 내 곁에 있는 인연, 나를 지나갔던 인연이 부유하다 가라앉는다. 유창하다고 생각한 한국어지만, 마음을 전하는 방법에 능숙하지 못해 내 곁에 있는 인연에게도 더듬거리며 말하고, 표정으로 짐작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생각이 멈추고, 차 앞에 섰다. 어머니께서 오셨다. 어깨를 으쓱하고는 나에 어깨를 토닥이시며 말씀하신다.
"와줘서 고맙다, 아들. 오늘 수고 많았다."
더듬거리는 마음 때문에 어머니에게 전하지 못한 말이 있다.
'어머니 덕분에 재미난 경험 했습니다. 제가 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