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다른 것뿐이지요?
제가 맵찔이가 아니고요, 저분들이 '맵치광이' 입니다.
여자친구도, 동생도 엽기 떡볶이를 좋아한다. 뚜껑을 여는 순간 코가 아릿하고, 먹지도 않았지만, 땀이 삐질 날 정도다. 착한 맛, 초보맛, 덜 매운맛, 오리지널, 매운맛 다섯 단계가 있는데, 어떤 단계에 가도 난 맵다. 내 한계는 초보맛. 그래서 강한 매운맛을 먹고 싶은 두 분께서는 나를 배려하기 위해 착한 맛을 선택하지만,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 조금 아쉬워한다.
그들은 매운맛에 약한 나를 보며 한 마디 꼭 한다.
"어이구, 맵찔이."
맵찔이. 맵다와 찌질이가 합쳐져 만든 단어로, 매운맛에 약한 사람들을 이른다. 한동안 아니, 그 단어가 나올 때부터 난 맵찔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다녔다. 글을 쓰니, 민감해진 것 중 하나가 바로 단어를 바라보는 눈이다. 맵다 아래에 있는 다른 단어를 꺼내볼까?
얼큰하다. 알싸하다. 맵싸하다. 칼칼하다, 아리다, 아릿하다, 알알하다. 캅사이신으로 대표되는 매운맛은 화끈하다. 스코빌 지수라고 해서, 피망은 0, 청양고추는 8,000이고, 큰 마음먹고 도전을 해도 아프기까지 하는 1,600만짜리 음식도 있다고 한다. 마늘은 아릿한 맛, 알싸한 맛, 칼칼한 맛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알리신 성분이 캅사이신이 내는 맛과는 다른 매운맛을 선사한다. 다음으로는 후추. 고기의 누린 맛을 사라지게 하고, 알알한 맛을 낸다. 마지막으로는 고추냉이. 입보다는 코를 강하게 때리는 고추냉이는 시니그린이라는 물질이 매운맛을 낸다고 한다.
가만히 보니, 난 화끈한 캡사인을 제외하고는 잘 먹는다. 알알한 맛을 좋아해 고기를 구울 때는 항상 곁에 두고, 돈가스를 먹을 때, 후추를 뿌려 먹는다. 고추냉이는 무엇하랴. 초밥집에 가면 늘 고추냉이를 추가로 주문하기까지 한다.
억울했다. 난 꽤나 매운 것을 잘 먹는 사람인데, '맵찔이'리니.
우리는 왜 매운맛 - 사실 맛도 아니다. 맛을 느끼는 감각기관은 단맛, 신맛, 쓴맛, 짠맛을 느끼고 매움은 통각으로 전달된다고 한다-에 열광하게 된 것일까? 매운 음식을 먹으면 우리 몸은 통증으로 인식한다. 몸은 아픔에 대응하며 내어 놓는 물질이 있는데 바로 엔도르핀이다. 거기다, 함께 나오는 호르몬은 도파민. 엔도르핀은 우리 몸에 있는 고통을 잊게 하고, 도파민은 사람을 흥분하게 해 살아갈 의욕과 흥미까지 부여한다고 한다. 강한 매운맛이 올 수록, 그 보상으로 진한 호르몬이 나오니, 우리가 열광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고유의 매움은 불닭볶음면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엽떡이 되기도 했다. 또는 이름부터 무서운 '디진다 돈가스'가 만들어졌고, 실비김치로도 나왔다. 단순히 우리가 즐기는 맛에서 이제는 콘텐츠가 되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코로나 시국 때, 스트레스 지수가 높았기 때문인지 매운맛의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났다고 한다. 2019년에 비해 2020년에는 3배가량 증가되었다고 한다.
불닭볶음면을 만든 삼양에서는 2022년 기준으로 수출과 현지생산을 합쳐 2 조원의 매출을 했고, 라면 수출의 70% 이상이 매운맛의 선두주자인 붉닭볶음면이라고 하니, 말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다. 매운 것. 특히 캅사이신으로 만든 매움을 모르는 내가 보기에는 붉은색의 돌풍이 불어와 눈을 아릿하게 한다.
18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철학자, 철학자, 정치학자인 니콜라 드 코도르세(Marie Jean Antoine Nicolas de Caritat, marquis de Condorcet; 콩도르세 후작 마리 장 앙투안 니콜라 드 카리타)가 한 말이 떠오른다.
"남의 생활과 비교하지 말고, 너 자신의 생활을 즐겨라."
(Enjoy your own life without comparing it with that of another.)
내 가슴에다가 맵찔이라는 이름을 걸어둔 그녀들에게 보란 듯 떼어 낸다. 두줄로 쓱쓱 긋고는 그녀들에게 다시 돌려두며 읊조리고 싶다.
"'맵치광이'들아. 남의 생활과 비교하지 말고, 우리 각자의 맵기의 생활을 즐기자."
덧붙임
사진은 엽기떡볶이 남은 소스로 볶음밥을 만들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