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도 매일 새로 시작합니다.
어쩌다 사장이 된 차태현과 조인성이 하는 연기 고민은?
<어쩌다 사장> 시리즈를 봤다. 어쩌다 사장이 된 차태현과 조인성이 슈퍼를 꾸려가는 이야기다. <어쩌다 사장 1>은 강원도 화천에 있는 작은 슈퍼를 운영했고, 시즌 2에서는 식육점과 식당까지 있는 거대한 할인마트를 운영했다. 슈퍼도 할인마트도 문을 닫기 쉽지 않다. 수익 측면도 있지만, 사장님들의 공통된 생각이 있으시다.
'시골에 유일한 이곳이 문을 닫으면, 급한 물건을 살 곳이 없다. 그래서 닫을 수 없다.'
작은 슈퍼에서도, 커다란 할인마트에서도 사람이 오간다. 계산을 해주고, 숨어 있는 물건을 찾아 주며, 음식까지 한다. 배우에게는 낯선 일을 어깨에 힘을 단단하게 주고 하니, 저녁만 되면 다들 녹초가 된다. 딱딱해진 어깨를 풀어주고, 오늘 하루를 견딘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
묵직하게 있던 장애물이 치워지니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리나 보다. 다들 배우니, 말이라는 물이 흘러 연기로 모여 이야기 저수지가 된다. 장사가 끝난 할인 마트의 직원이 된냥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차태현은 데뷔한 지 30년 가까이 된다. 인생의 대부분을 연기와 함께 보냈다. 영화는 <엽기적인 그녀>, <과속스캔들>부터 천만 명이 훌쩍 넘게 온 <신과 함께 죄와 벌>에 주연을 한 그에게 연기를 자연스럽고, 이제는 쉽지 않을까 했다. 조인성도 만만치 앗다. 2000년에 데뷔해 23년 동안 연기를 했다. <비열한 거리>에서 깡패가 되기도 하고,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는 두고두고 남을 짤을 만들기도 했으며,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는 강한 캐릭터를 보여줬다.
술이 한 잔 들어가고, 편안한 이들과 있어서일까? 마음에 있던 이야기를 내어놓았다.
"전 작품에서 잘했든 못했든 매번 리셋되는 '제로값'인 느낌."
많은 작품을 했고, 오래도록 연기를 했지만,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라고 한다. 직전에 천만 배우가 되고, 시청률이 고공행진을 한 이력은 새로운 작품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한다.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스텝, 새로운 시작 앞에서는 여전히 떨리고, 제로값에서 시작하는 막막함이 그들의 어깨를 짓누른다고 한다.
이야기는 끝났고, 어지러워진 식탁을 치운다. 웃으며, 담담하게 차태현이 마지막으로 말하며 다음 날로 넘어갔다.
"잘 버티는 게 중요하단다."
그들이 남긴 이야기 저수지를 가만 보고 있으니, 글쓰기와도 무척 비슷하다. 흰 종이에 검은 커서만 깜빡 거린다. 어제 글을 쓰고 발행한 일은 지금 쓰는 글에는 어떠한 영향을 주지 못한다. 새롭다. 제로가 된다. 쓰고, 지우고, 고민이 반복된다. 영화에 나오는 작가처럼 종이를 구겨 뒤로 던지고 싶지만, 컴퓨터라 안된다. 마음 서랍에 쓰다 만 글을 휙 던진다.
다시 하얀 화면에 검은 커서가 날 기다린다. 다시 제로. 하다 하다 안되면 지난 글을 읽는다. 퍽 괜찮은 내 글을 보며 안심하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글을 보며 고친다. 아! 매번 제로가 되는 일에도 좋은 점이 있다. 지난번에 못난 글을 쓰고 내어 놓았다 하더라도 지금 나에게는 영향이 없다는 사실. 다시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
버티는 일 말고는 답이 없다. 누군가는 내 글을 읽으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갈 수 있다. 버틴다는 일이 고개를 숙이고 외부에 드러나는 내 몸을 가장 작게 만드는 일일까? 입을 꾹 닫고, 매일 마주하는 제로에 불안해야 할까? 버티는 일도 조금은 멋지게 하고 싶다. 지난번에 했던 이력에 의지 하지 않고, 오늘을 마주하는 당당함.
허지웅의 <버티는 삶에 대하여>에 나오는 문장이 하나 마음에 부유한다. 무언가 이루지 못하는 버팀이라 하더라도 누군가 그 문장을 말해준다면, 난 성공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도 쟤 꽤 오래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