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당신의 또 다른 영혼입니다.
가끔 어머니 이름을 부른다.
어머니는 뜨개질을 하신다. 만들어 놓은 작품은 동생 가게에서 판매되는데, 매출에 큰 기둥이다. 보통 작은 가방에서부터 커다란 팩까지 제작을 하신다. 뜨개질을 마치면 꼭 시장에 가야 한다. 똑딱이 단추를 달거나, 지퍼로 입구를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안감을 덧대야 하기도 한다. 오늘도 작품이 완성된 모양이다. 시장으로 같이 가자고 하신다. 겸사겸사 떨어진 식료품도 필요했고.
오랜만에 시장에 갔다. 내가 바쁜 탓도 있고, 어머니와 시간이 어긋나는 일이 요즘 많았다. 오랜만에 간 곳은 변함없이 사람들이 오간다. 어머니의 작품을 맡기고, 시장에 있는 할인점으로 향했다. 1층은 신선한 채소, 고기, 과일이 있고, 2층에는 식재료가 가지런히 앉아 사람을 기다린다. 들어서자마자 어머니는 돌아서며 나에게 명령하신다.
"2층에 가서 부침가루, 진간장, 유부초밥을 사 와."
고개를 비장하게 끄덕이고는 2층으로 향했다. 부침가루도, 진간장도, 유부초밥도 참 다양했다. 크기도 다르고, 무게도 다르며, 제조회사도 달랐다. 눈을 잠시 감고 우리 집 주방을 상상했다. 떠오르던 색과 크기에 맞춰 부침가루도, 간장도, 유부초밥도 손에 들고는 어머니를 찾아 내려갔다.
내 손에 들린 물건을 빠르게 훑어보시던 어머니는 웃음을 내놓으시며, 잘했다면 얼른 계산대로 향하신다.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어머니의 손에 있던 장바구니를 빼앗아 들고 따라나섰다. 계산대에 물건을 하나씩 내려 두고, 물건을 받으려 앞으로 갔다.
착착 계산대를 거쳐, 장바구니에 하나씩 담긴다. 카드를 건네고 기다리니 계산대 아주머니께서 물어보신다.
"포인트 있으세요?"
"네"라고 답하고 휴대전화 뒷자리를 말했다. 질문이 돌아왔다. 이름을 물어보신다. 멈칫했다.
나에게는 어머니. 할아버지에게는 딸. 또 다른 할아버지에게는 며느리. 아버지에게는 아내. 어머니는 이름을 잃어버리신 걸까? 그녀는 누군가의 어머니이기만 한 건 아니다. 누군가의 딸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물론 누군가의 아내이자 며느리이기만 한 건 아니다. 지금은 많이 지워져 버린, 아니 다른 무거운 이름 덕분에 그녀의 이름이 뒤로 밀렸을 테다.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며 불리던 이름은 아버지를 만나 아내라는 이름 뒤에 섰을 테다. 결혼 뒤, 시간이 흘러 내가 태어났고, 누구누구 엄마로 불렸을 테고, 내가 커 이제는 어머니라는 묵직한 이름이 앞에 선다. 그녀의 이름이 제일 뒤에 서서 손을 꼼지락 거린다. 시간이 더 흘러가니, 동생이 태어났고, 두툼해진 어머니가 당당하게 앞에 선다. 그녀의 이름은 이제는 보이지도 않는다.
안다. 자녀를 키우는 일도, 결혼을 하는 일도 모두 어마어마한 결정이다. 작가이자 페럴림픽 선수인 엘리자베스 스톤이 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자녀를 갖겠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결정이다. 이는 내 마음이 영원히 내 몸 밖으로 돌아다니게 하겠다는 뜻이다."
"Making the decision to have a child it is momentous. It is to decide forever to have your heart go walking around outside your body."
어머니 몸에서 나온 또 다른 영혼인 내가 가장 뒤에 있는 어머니 이름으로 다가가 본다. 동생과 나의 어머니, 아내, 며느리, 딸을 지나 만난 그곳에 이름이 앉아있다. 난 그녀의 등을 두들기며 앞으로 가자고 손을 내밀었다. 난 당신의 또 다른 존재라고 하며 앞으로 가자고 했다. 머뭇 거리는 그녀에게, 당신의 자리는 뒤가 아니라 저기 앞이라고 손짓했다.
가만히 있으니, 뒤에서 어머니께서 자신의 이름을 외치신다. 피식 웃으며 남은 물건을 장바구니에 차곡차곡 넣었다. 어머니의 이름을 찾아 드리고 싶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가장 앞에 그녀의 이름을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