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좋은 아침, 좋은 점심, 좋은 저녁입니다.
굿모닝이 아닌데, 굿모닝 하다 보면 굿모닝이 된다.
봤던 예능을 다시 본다. 소란스럽지 않은 예능을 좋아하는데, <삼시 세끼>, <윤식당>, <여름방학>, <효리네 민박>이 대표다. 이번에 다시 돌아온 예능은 <스페인 하숙>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 숙소가 있다. 순례객들을 위한 숙소가 있다. 알베르게. 차승원, 유해진이 이곳에서 한식을 준비하고 고단한 걸음을 뗐을 이들에게 휴식을 나누는 예능이다.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 밥을 먹는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 눈에 들어온 문장이 하나 있었다.
"상대가 굿모닝을 하길래 나도 굿모닝을 하다 보니까 굿모닝이 되는 거야."
인사를 잘하는 편인가 하면?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주장(?)하고 싶다. 유교문화가 강한 고향에서는 인사가 생활이었다.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랜만에 뵙게 되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동네에 계시는 어르신을 만나면 방에 들어가 절을 꼭 해야 했다. 그런 문화를 오래도록 겪은 탓일까? 대학에 가서는 인사를 잘하지 않는 건방진(?) 학생이 되었다. 친구들과만 어울리고, 선배들과는 서걱 거렸으며, 교수님과는 수업 이외에 만날 일이 없으니, 인사할 일이 거의 없다고 변명을 하고 싶기도 하다.
다시 인사를 착실하게 하게 된 것은 박사 졸업 끝자락. 직장을 가서도 인사는 참 착실하게 했다. 예의라고 생각했고, 근무지가 달라 자주 만나지 못하는 분들에게 인사로 마음을 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며 받은 훈련이 자연스럽게 녹아 나온 덕분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를 깊게 보면 다른 뜻이 보인다. 머리 뒤편 먼지가 가득한 상자 속에 있던 생각을 꺼내본다. 유교가 강한 그곳에서 들었던 이야기 한 조각이 나왔다. 안녕(安寧). 무슨 뜻일까? 중국 고전에서 쓴 단어라고 한다. 당시에는 강한 국가가 있던 시대가 아니다. 사실, 국가라는 형태가 희미한 상태에 가깝다. 농사를 짓다 보면 세금 받는 사람이 달라지는 정도라고 해야 할까? 혼란이 일상처럼 있는 그들은 비일상적인 혼란이 없는 상태를 보고, 안녕이라고 했다.
'어지러운 상태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안전하다.'
다른 나라의 인사를 살펴볼까? 중국의 인사인 '니하오'는 '당신 다 좋죠?'라는 뜻. 이슬람인들은 앗살람 아라이쿰(as Salam Aleikum)은 당신에게 평화를,라는 뜻이라고 한다. 모두 평화, 안정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전하거나, 만난 이들에게 주려고 한다. 곰곰 생각해 보니, 내 인사를 늘 밖으로 항해 있었다. 누군가에게 내 존재를 알리거나, 내가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배려 정도였다.
어지러운 상태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안전하십니까? 또는 반갑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참 좋군요. 유해진 배우가 한 말과 안녕이라는 뜻이 만나니, 조금은 오묘해진다. 인사를 사실 밖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사를 하면 최소 두 명의 듣는 이가 생기는 건 아닐까. 우선 내 앞이 있는 사람, 그리고 음파가 벽에 부딪혀 다시 돌아와 듣는 나. 결국 인사는 밖으로만 향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이 된다 안녕이라는 말을 하는 순간 나도 어지러운 상태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안전하길 바란다는 기원이고, 당신이 다 좋냐는 물음은 나도 오늘 하루 다 좋길 바라는 기도이며,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길 바라는 주문은 결국 나를 향하는 주문이기도 하다.
굿모닝이 아닌데, 굿모닝을 하길래 굿모닝을 하니 굿모닝이 된다는 말에 완전히 동의한다. 그렇다. 사실 인사는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오늘 나가는 날 괜히 동네 분들에게 인사를 하려고 한다. 마침 잘되었다. 1층에 계신 어르신이 나를 급하게 찾으신다. 배에 힘을 딱 주고 인사를 드려야겠다.
안녕하십니까!
덧붙임
1층 어르신이 저를 찾은 까닭은 초인종이 고장 났기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