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arry Garden Sep 12. 2023

어디 좋은 일만 계획하나요?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하는 이유.

어디 좋은 일만 계획하나요?

 

    영화관에 가면 꼭 광고를 본다. 생각보다 광고를 볼 일이 없다. 유튜브는 프리미엄으로 광고를 피했고, OTT 서비스에서도 광고를 보긴 쉽지 않다. 또, 텔레비전은 잘 보지 않으니 광고를 볼 기회를 잃었다. 광고 홍수에 빠져 있을 때는 허우적거리며 탈출을 바랐지만 안전한 곳에 있다 보니, 가끔 광고를 보고 싶어 영화관 광고를 챙겨(?) 본다.


  광고를 굳이 보는 다른 이유는 그 짧은 시간에 정보를 쨍하게 전달하고, 때로는 마음을 먹먹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쏀 문장으로 사람을 사로잡는 그 힘에 매력을 느끼곤 한다. 얼마 전, 영화관에 미리 가 앉아 광고를 기다렸다. 


  휴대전화 광고가 힙하게 흘러가고, 다이어트를 도와준다며 지방이를 고통스럽게 하는 광고도 나온다. 멍하니, 그들의 의도에 따라 몸을 맡기도 있다 고개를 끄덕이고, 문장을 수집하기도 했다. 마음에 턱 하고 걸리는 광고가 있다.


  보험 광고다. 멋진 정장을 입은 배우가 달력을 걸어 다닌다. 시간을 보며 계획을 세운다. 휴가, 공연 관람, 이사, 가족모임, 캠핑.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인생은 생각처럼 굴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달력에는 생각하지 못한 질병, 계획하지 않은 사고가 존재한다. 보험사는 우리를 지켜 주겠다고 말한다. 다음 광고가 가고, 영화가 시작쯤에 왔다. 스크린은 조금 내려가고, 조명은 완전히 꺼진다. 깜깜한 영화관에 문장 하나가 반짝 켜졌다 꺼진다.


  "어디 좋은 일만 계획하나요?"


  예전에 믿고 따를 만한 선배가 박사과정 끝에 다다른 나에게 한 말이 있다. 


  "박사 졸업하고 사회에 가면 지금처럼 하면 안 된다. 빈 공간, 남는 힘이 있어야 해."


  자신을 불태우며 능력을 벗어나는 일을 시간과 몸으로 겨우 막고 있는 나를 위로하는 말이라 생각했다. 별생각 없이 선배 말을 작은 서랍에 넣고 꽝하고 닫았다. 문장은 까먹었고, 마음만 받았다. 그런 순간이 있다. 완전히 있고 있던 마음과 문장이 어떤 이유도 없이 떠오르는 순간. 광고가 선배의 말을 꺼내어 내 앞에 두었다.


  빈 공간, 남은 힘. 계획하는 일에 모든 공간과 힘을 주고 나면, 좋지 않은 일이 올 때, 우린 당황하게 된다. 꽉 채워 넣은 일들을 빼야 하고, 에너지 방향을 돌려야 한다. 빈틈이 없다는 것은 내가 위기에 대처할 힘이 없다는 다른 말이 아닐까? 좋은 일만을 치밀하게 계획할 일이 아니다. 우린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빈 시간과 에너지를 놓아두어야 한다. 


  그럼 그 비어있는 시간과 에너지는 소중한 인생을 허투루 쓰고 있는 일일까? 아니다. "자연은 진공을 허락하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내가 언제든 쓸 수 있는 여유는 비어만 있지 않는다.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은 바로 내 삶이다. 내 마음의 빈 공간에 글쓰기가 들어온 것처럼.


  좋지 않은 일을 계획하고, 여유를 가지는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그 선배는 알고 나에게 말을 건넨 것일까? 정말일까? 말을 건넨 분의 의도와는 다른 해석일지라도, 나만의 해석이 퍽 괜찮아 보인다. 그에게 물어 확인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가득 차있는 내 달력의 일정을 가는 눈으로 째려보니,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보인다. 쓱쓱 지워 빈틈을 만들어 본다. 여유를 가지는 시간을 넣고, 언제든 생각하지 못한 일이 올 때를 위해 남겨두어 본다. 여유가 있는 그 틈으로 어떤 내 삶이 올지 조금 기대하며 말이다.

  


어디 좋은 일만 계획하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굿모닝이 아닌데, 굿모닝 하다 보면 굿모닝이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