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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Dec 11. 2023

부모님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자식이 알지 못했던 부모님의 마음.

부모님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마음에 깊게 남는 영화가 있다. 거창하게 말하면 "인생영화"라고 할까? 아직 영화를 볼 기회가 많고, 세상에 나오지 못한 걸작이 있을 수 있으니 인생영화라는 챔피언 벨트는 언제나 바뀔 수 있다. 오래도록 내 마음 인생영화 챔피언 벨트를 지키고 있는데, 바로 "대부 (Godfather)"다. 1972년에 태어난 영화니, 나보다도 나이가 많으신 분이다. 대부를 꽉 눌러 한 문장으로 만든다면, "이탈리아 이민자인 콜레오네 집안 이야기"다.


   1편부터 3편을 묶어서 좋고, 굳이 줄을 세우라고 한다면, 어깨를 거의 겹치며 1편 2편 3편 순서로 좋아한다. 물론 조직폭력을 마치 멋진 일처럼 포장하는 일을  좋아하지는 않다. 거기다, 실제 미국 마피아 두목인 이들이 영화를 보고는 극찬을 했다고 하니, 폭력을 지지하는 모양새가 좋지만은 않다. 


  조직 폭력을 걷어내고 영화를 보면 한 단어로 만들 수 있다. 바로, '가족'이다. 영화와 책은 가끔 내 삶의 거대한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가족에 대한 내 생각을 대부가 큰 영향을 줬다. 글을 적기 전에 영화를 볼까 하다, 자주 봤으니 한 발짝 떨어져서 영화를 보려고 이런저런 기사들을 훑었다. 몰랐던 사실이 하나 눈에 들어왔는데, 바로 대부에서 조직을 '가족 (family)'라고 지칭한 이유다.


  마피아들은 자신들이 영화로 나온다는 사실이 마뜩지 않은 모양이었나 보다. 당시에 마피아는 영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압박을 가했다. 웃으며 회유를 했을 수도 있고, 총을 철컥 거리며 협박을 했을 수도 있다. 그들은 '마피아'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말라고 윽박질렀다. 영화 관계자들은 고민을 했을 테다. 고뇌 끝에 나온 단어는 가족, 패밀리다. 영화 전체가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그들의 의미를 말하는 함축된 단어로도 딱 떨어졌다. 


  영화 끝에 가면, 폭력으로 점철된 자신의 삶이 그렇게 좋지 않다는 고백을 한다. 첫째 아들은 총격전으로 사망했고, 자기도 암살 기도로 인해 죽을 뻔 한 이 자리를 막내아들에게 넘겨준다.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방법을 구상한다. 아버지 콜레오네가 아들 콜레오네에게 한 말이 인상이 깊다. 


"I knew that Santino was going to have to go through all this. And Fredo - well... Fredo was well... But I never... I never wanted this for you. I work my whole life, I don't apologize, to take care of my family. And I refused, to be a fool, dancing on the string, held by all those bigshots. I don't apologize, that's my life, but I thought that when it was your time that you would be the one to hold the strings. Senator Corleone, Governor Corleone, or something... There wasn’t enough time, Michael. Wasn’t enough time…"
"나는 산티노가 내 후계일을 맡을 줄 알았다. 그리고 프레도는... 그 애는 별로... 하지만 난 절대... 네가 이렇게 되기를 원하지는 않았어. 내가 평생 동안 일만 하고 사과를 하지 않았던 건 다 내 가족을 돌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난 광대가 되는 것도 거부했지, 실에 매달려 거물들한테 휘둘리는 신세 말이야. 나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게 내 삶이었어, 하지만 네 시간이 오게 되면 나는 네가 그 실타래를 휘두르는 거물이 될 줄 알았단다. 상원 의원 콜레오네나, 주지사 콜레오네, 뭐 그런 거...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했던 모양이구나, 마이클. 시간이 없었어…"


  부모님은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란다. 월등한 삶이라고 하려면 기준이 있을 텐데 무엇일까? 돈이 될까? 명예가 될까? 돈 콜레오네가 아들에게 한 말을 솎아내고 보면 단서가 있을까? 지금 자신이 가진 한계, 자신이 가지지 못한 부분을 채워 완전히 채우길 바라는 마음이 보인다. 


  내 부모님은 열심히 사셨고, 지금도 그러하다. 부지런함을 사람으로 만들면 두 분이 아닐까 한다. 노는 일, 쉬는 일이 어색할 정도로 근면하신 분들이다. 나보다 어린 나이에 두 아이의 부모가 되기도 하고, 나보다 어린 나이에 일에 책임자가 되었다. 몇 차례 불운이 삶을 덮치는 순간에도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걸어왔다. 부모님의 삶을 듣게 될수록, 나는 그분들을 뛰어넘는 사람은 물론이고, 비슷한 사람이 되는 일조차도 두렵다.


  가끔 아버지는 날 '박사'라고 부르신다. 건너 듣게 되는 부모님 이야기에서 나는 이미 자랑이다. 부모님을 능가할 자신은 없는데, 이미 그분들에게는 나는 넘어선 자식일까? 질문에 답을 내놓고 싶은데, 질문과 질문이 손을 잡아 이어져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부모님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글을 쓰고, 퇴고를 하며 글을 마무리 지으려다 멈추길 반복했다. 도착지 없는 글을 지우고 바꿨다. 돈 콜레오네가 한 마지막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했던 모양이구나, 마이클. 시간이 없었어." 답의 단서를 쥐고 있는 부모님과 내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 곁에 있을 때, 대화를 나눠야겠다. 아! 그전에 다시 대부를 다시 봐야겠다. 내가 알지 못한 부모님 마음을 알 수 있는 단서를 줄 수 있으니.


  이 글의 마무리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남은 시간을 귀하게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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