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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Sep 10. 2023

바람을 타고 떠난 저승 이야기.

스리랑카와 부커 상을 아시나요?

스리랑카와 부커 상을 아시나요?


    난 상을 탄 작품을 멀리한다. 영화가 특히 심하다. 베니스 영화제, 칸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을 탔다는 작품은 못 본 척 피한다. 어렵고 알 수 없는 이야기가 흘러가는 영상에 내 영혼도 함께 쓸려간다. 이해하지 못한 내 수준이 별로인가 싶기도 하고, 이해하기 위해 기사를 읽고, 평론을 접하는 일이 더 깊은 물로 빠지는 기분이 든다. 영화에서 키워진 '프라이즈 포비아'는 책으로도 이어진다. 부커 상을 받았다는 커다란 띠지와 함께 내게 들린 책은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이다.


말리의 일곱 개의 달.


   우리나라에서도 부커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2016년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맨 부커 국제상*을 받았을 때다. 그 책도 읽지 않았다. 분당 9.6권씩 팔리던 때도 방송에서 나왔던 때도 난 눈을 아래로 깔고 못 본 척했다. 어렵고, 모르는 나를 보며 초라해지기 싫었다. 


*한강 작가가 수상했던 2016년에는 맨 그룹과 부커 사(식품 도매 회사)가 함께 후원을 했기에, 맨 부커상이라로 이름이 붙었고, 지금은 맨 그룹이 후원을 마침에 따라 부커 상이라고 불린다. 


  책 뒤에 보인 단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스리랑카. 책은 더 무거워졌고, 표지는 단단하게 보였다. 습한 바람이 불어오는 미지의 정글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보는 장점이 있다. 깊어진다. 하지만, 좁다. 잘 닦여있고, 넓은 길을 벗어나 정글로 가는 듯하다. 두꺼운 가지가 나를 막고, 축축한 미지의 영역처럼 느껴지는 책.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까? 이번에 단단히 마음을 먹어본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튼튼한 독서대를 두고, 휴대전화를 덮어 높는다. 책을 펼치니, 바람이 휙 불어, 날 알 수 없는 곳에 내려놓는다.


바람을 타고 떠난 저승이야기.


  주머니가 불룩하다. 수첩이 두 개가 있다. 수첩 하나에는 구불구불한 단어와 한글로 풀어놓은 뜻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다른 하나에는 스리랑카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영토 크기, 인구... 뒤에는 싱할라족, 타밀족 비율, 종교인에 대한 숫자가 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높은 곳에 시계가 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바뀌다 서다를 반복한다. 바람이 다시 휙 불더니, 북적거리는 건물 앞으로 내려보낸다.


  커다란 명부를 지닌 구릿빛 피부를 가진 이가 내가 온다. 나를 빤히 보더니, 앉아서 명부를 첫 장부터 넘기기 시작한다. 흠칫 놀라더니, 목을 가다듬고 말을 건넨다. "내 말 이해되니?" 고개를 끄덕이자,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무슨 이유로 왔는지 모르겠지만, 여긴 중간세계라고 이른다. 욕설이 난무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의 큰소리를 밀어내며 날 안내한다. 내 앞에 걷던 이는 커다란 안내판 지나쳐 간다.


  그의 안내를 따라 도착 한 곳에는 단정한 흰색 양복을 입고, 하얀 수염이 가지런하게 정리된 이가 나를 웃으며 맞이한다. 정중한 태도로 나를 푹신한 의자에 앉히더니, 일이 잘못된 것에 대한 사과를 한다. "죄송하지만, 7개의 달이.. 아니, 7일 동안 여기서 머문 뒤에야 당신의 세계로 갈 수 있습니다. 높디높은 존재께서 그대가 여길 여행하길 바라는 모양입니다. 이곳을 여행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편한 방에서 머무셔도 됩니다." 난 여길 다녀보고 싶다고 했다. 돌아 나가는 날 보며 그는 말에 힘을 꾹꾹 주며 건넨다.


  "사람들은 원래 자기가 아닌 남들에게 안 좋은 일이 벌어지면 무관심합니다(p 381). 부탁드립니다. 여기에서 겪은 일을 기억해 주세요." 정중한 인사에 놀라 엉거주춤 인사를 하고 나왔다. 목에 카메라를 든 이가 나에게 뚜벅뚜벅 걸어온다. 자세히 보니, 진흙이 렌즈에 가득한 것을 보니, 이미 기능을 상실한 모양이다.


  "나와 함께 가지 이방인!" 손목을 낚아챈 그를 따라 바람에 몸을 맡겼다. 그와 나눈 이야기, 내가 보고 들었던 장면을 적었다. 스리랑카가 마음을 꾹 누른다. 싱할라족과 타밀족의 다툼이 보였고, 압제로 억울하게 죽어나간 분들이 마음을 할퀴고 간다. 선과 악은 희미해 보였다. 


  아니, 선과 악의 전투는 항상 일방적이었다. 악은 더 잘 조직되어 있었고, 무기도 많았으며, 월급도 두둑했다. 자기들이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믿고, 행하는 자들의 조직적인 집단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치를 떨어야 한 상대가 되었다(p 480). 


  그와의 여행 끝에 약하디 약해 보이는 진실을 찾았고, 알렸다. 세상이 바뀔까? 조직된 이들은 무너질까? 빼곡하게 적어둔 수첩을 닫는다. 이름조차 물어볼 겨를도 없이 함께 다닌 그에게 이제는 괜찮냐고, 이름을 물어봤다. "말린다 앨버트 카발라나." 내 이름을 말하려는 찰나. 그는 이제 담담하게 나를 바라보면 입을 뗀다.


  "'네'가 누구인지 '너'라고 말하는 당신이 이제 궁금하지 않아요 (p505). 다만, 아는 것 한 가지는 당신이 잊지 않고 이 기록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달라는 겁니다. 그대의 나라로 가서 말이죠.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그 말을 하고 빛을 향해 걸어갔다. 밝고 쨍한 빛에 눈을 감았다.




  돌아왔다. 손때가 묻은 독서대, 두꺼운 책의 마지막장이 보인다. 옆에는 노란색 옥스퍼드 연습장이 나풀거린다. 빼곡하게 들어찬 문장을 되짚어 본다. 작은 오솔길이 만들어졌다. 그 길 끝에는 스리랑카의 아픔이, 지금의 어려운 이유가 있다. 스리랑카를 인터넷에 검색해본다. 작은 길을 넓어본다. 다른 이들의 아픔, 거기다 먼 곳에 있는 그들의 슬픔을 기억하는 길이 넓어져야만 한다. 내 좁았던 마음이 한층 커졌다. 어려워 보였던 부커상의 턱이 낮아졌다.


'말리'가 남긴 이야기.


추천드리는 분

  - 상 받은 책이 어려운 분.

  - 스리랑카의 역사가 궁금하신 분.

  - 두꺼운 책에 도전하고 싶은 분.


  #부커상 #스리랑카 #아픔 #내전 #저승



인플루엔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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