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석준`s Speech
사투리 백작, 세상을 감동시킬 도전을 시작하다.
난 사투리를 쓴다. 19년째, 수도권에서 살고 있지만 여전하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아이들 사이에 처음에 하는 일은 자기소개다. 참 싫었다. 하필 앞에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없다면, 낭패다. 무척 강한 발음과 특별한(?) 높낮이로 듣는 이들은 내 고향을 바로 알아차린다. 이어서 웃음소리. 주목받고 까르르 하는 소리에 부끄러웠던 적도 있지만, 잠시 뿐이었다. 생각을 바꾸니, 아이스 브래이킹으로 만점이라 생각했다.
열과 성을 다해 고치려고 하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바뀌리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오히려, 매일 함께 지내는 친구들의 억양이 나를 닮더니, 출신 불명의 이상한 높낮이를 만들었다. 포기했다. 그냥 두었다. 대학원에 가서야 내 발성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투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석사과정, 박사과정에는 참 많은 발표를 한다. 좋은 연구를 하는 만큼 중요한 것은 잘 알리는 일이다. 말로 알릴 수도 있고 글을 써서 알릴 수도 있다. 둘 다 쉽지 않았다. 거기다, 조교로 활동하며 학생들에게 실험을 보조하는 일에도 발표가 필요하다. 발표는 학교 안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학회에 가서 많은 전문가 앞에서도 해야 한다. 하게 되면, 알게 된다. 난 발음을 참 잘 뭉갠다. 전달하는 힘이 약하다. 아무리 좋은 연구를 해도, 전하지 못하면 의미는 희미해진다.
스피치가 훈련을 통해서 좋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한 건 바로 영화다. <킹스 스피치>. 때는 제2차 세계대전. 무대는 영국이다. 조지 6세는 말 더듬이다. 마이크 앞에 서면 자신보다 주위에 있는 사람이 더 긴장이 된다. 사고가 언제나도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무자비한 전쟁에서 나라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돋보기로 쨍한 빛을 한곳에 집중해야 높은 열이 나듯, 국민의 관심을 한 곳에 모아야 위기를 극복할 힘이 생긴다. 힘을 모을 돋보기는 연설이었다. 세기의 선동가인 히틀러에 맞서야 한다. 말더듬이 왕 조지 6세는 라이오넬 로그를 만나 곡절을 겪으며 개선된다. 빛을 모을 수 없던 돋보기를 잘 깎아내었더니, 영국인을 결집하게 했다. 역사가 스포일러다. 영국은 승리했다.
무대는 대한민국. S.G. 2세 (Starry Garden 2세)는 발표를 해야만 한다. 학위를 따야 하고, 면접을 보아야 하며, 회사에서도 발표가 줄을 잇는다. 발음은 뭉개지고, 사투리는 내용 집중을 어렵게 한다. 피해 갈 수 없는 발표에 초초한 마음을 감추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똑똑"
낯이 익은 그는 나에게 처음부터 해보자고 한다. 배에 힘을 줘야 한다고 한다. 호흡을 길게 빼고, 내뱉는다. 벽에 내 호흡이 닿을 정도로. 소리를 얹고 허밍을 하니 배에 힘이 들어간다. 다음은 모음 훈련. 내 앞에 명언과 모음만 있는 문장이 있다. 천천히 읽어보라고 한다. 매일 해야 발음이 맑아진다고 강조한다.
"타오르는 열망에 행동 계획까지 갖추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토마스 J. 빌로드
"아오으으 여아에 애오 예외아이 아우여 이우가 오아 어이 어아."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일이라 한다. 사투리를 정복해 보자고 날 독려한다. 평조 연습. 한 음절을 딱딱 끊어서 매일 한 문장씩 연습해보자고 한다. 힘겨워하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그는 꾸준한 연습은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호흡을 가다듬고 있으니, 그는 웃으며 내일도 연습할 때 보자며 손을 흔든다.
내 성과를, 내 의견을, 내 마음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돋보기가 만들어질까? 사투리 백작, 뭉개는 발음 남작의 세상을 감동시킬 도전 결과는 어떨까? 조지 6세처럼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까? 빛을 한곳에 집중시킬 힘이 생길까? 말더듬이 왕 조지 6세에게는 라이오넬 로그가 있다면, 사투리 백작, 뭉개는 발음 남작인 나에게는 한석준이 곁에 있을 테다.
추천드리는 분
- 발표가 떨리는 분.
- 사투리와 표준어를 하이브리드처럼 모두 구사하고 싶은 분.
- 평소에 말하는 일이 고민이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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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엔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