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을 잘라내고 나면, 다시 붙이기 참 어렵습니다.
표현할 기회를 흥청망청 쓰십시오.
긴 추석 연속된 쉬는 날, 좋았다.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을 수도 있고, 조금은 편안한 시간을 보낼 기회도 있었다. 추석이 가져온 생각 중 하나가 바로 고향이다. 내가 살던 고향은 참 단단하다. 조금 풀어서 설명을 해볼까? 세상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니 단단하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단단한 속에 있으며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소수의 굳건한 고향 어르신들이 (다행히 대부분 의식 있고, 유연하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하시던 말이 기억 저편에서 희미한 모습으로 등장하더니, 문장을 꺼내놓고 갔다. 거북스럽게도 그 문장 앞에는 늘 '남자'를 붙이고, 때로는 '자고로'가 달려있다.
"(남자는 자고로) 진중해야 한다."
"(남자는 자고로) 울지 말아야 한다."
"(남자는 자고로) 표현하지 말고 참아야 한다."
"(남자는 자고로) 책임지고 말도 묵직해야 한다."
....
기억난 문장에 관통하는 의미가 하나 있다. 바로 '표현을 잘라내라.' 뒤따르는 합리화로 표현하지 않아도 잘 안다. 이심전심이라고 하며, 표현하는 일은 거추장스러운 일이라 한다. 말하지 않고, 웃음 짓지 않지만 모두가 마음을 알아준다는 생각. 그러한 사람이 묵직한 사람이라고 하신다. 명확해진 문장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으니, 그분들은 우리 생에 표현할 수 있는 기회는 꽁꽁 숨겨두었다 쓰라는 뜻처럼 보였다.
이상한 소리라 생각했지만, 그들의 말에 순순히 응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마음에 있던 "표현"을 예리한 칼로 도려내었다. 군것진 것을 떼어내고 나니, 어딘가 허전했다.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며 잊고 지냈다. 잘 보관해 두고, 결정적인 순간에 꺼내 쓰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도 모두 알리라 믿었다.
대학을 가게 되었다. 안전하게 나를 지켜주지만, 답답했던 그곳을 떠나 수도권으로 가서 지낼 기회가 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있었다. 배경이 서로 다른 친구들과 시간과 공간을 나누니, 생각을 자연스레 변화했다. 가장 크게 변한 일이 바로 표현이다. 내 곁에 있는 좋은 친구들은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나에게 언제가 도움을 받으면 고맙다 했고, 가족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주저 없이 했다.
급하게 찾았다. 고향에서 잘라낸 '표현'. 한참을 잊고 있던 녀석을 찾았다. 시간이 흘러 바람도 불고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하는 시간을 견디고 있었던 모양이다. 수분을 공기에 내어주고 나니, 볼품없이 쭈글쭈글 해졌다. 기회가 왔지만, 바로 쓸 수 없었다.
잘 펴두었지만, 예전 기억 속 표현보다 작아진 녀석을 떼어진 곳에 다시 붙였다. 나무에 접붙이기처럼.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말했고, 떨어져 살고 있어 만나지 못한 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불편하고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한 표현이 시간이 지나네 조금씩 자라났다. 열매가 맺더니, 쓸 수 있는 녀석들이 자라났다.
여전히 어렵다. 아직도 어렵다. 언제까지 어려울까? 표현은 '남자는 자고로'라는 이유로 떼어낼 수 없는 일이다. 우리 곁에 있는 이들에게 표현하는 일은 낯간지러운 일이 아니다. 이제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표현할 수 있는 이들이 곁에 있고, 그들에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 말해야 안다. 알아도 말 한번 더 하는 일이 나쁜 일일까? 마음에 새기고 싶다. 언젠가 내가 표현하고 싶어도, 시기를 놓치고 하지 못한 때가 온다.
아직도 난 떼어내고 다시 붙인 표현을 잘 가꾸고 있다. 표현이라는 방법이 나무에 맺혀있다. 매일 그 열매를 따서 표현기회를 흥청망청 쓰고 있다. 오늘이 끝날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