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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Oct 16. 2023

마음을 꾹 쥐어짜서 적는 글.

쥐어 짜다 보면, 계속 나오기도 합니다.

마음을 꾹 쥐어짜서 적는 글.


  양치를 하며 멍하니, 거울을 보곤 한다. 작은 칫솔에 치약을 쭉 짜내어 얹은 뒤, 입에 넣어 왔다 갔다 하면, 텁텁하던 입이 화해진다. 퉤 뱉고, 이 안쪽을 다시 삭삭 소리를 내며 거품을 다시 만들어 낸다. 다시 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입에 물을 조금 채운다. 목을 뒤로하며 천장을 보며 가글을 한다. 물을 여러 번 헹궈내면 의식을 되찾고, 입 근처에 묻어 있는 거품을 닦아낸다.


  양치를 하려 치약을 짜내다 보면, 신기한 경우가 있다. 종이장처럼 얇고 옆으로 보면 이제는 내뱉은 약이 있을까 싶지만, 주둥이를 꺾어 꽉 누르면 나온다. 버리려고 하면, 어머니는 아직 쓸 수 있다며, 두 손으로 내 칫솔에 약을 한가득 내어 놓기도 한다. 민망한 마음에 얇은 치약을 보고 있으면, 이들의 가능성에 감탄한다.


  괜히 그런 날이 있다. 아무런 의미 없어 보이는 물건에 내가 보이는 날. 얄따랗게 있는 치약이 글 쓰는 나처럼 보였다. 글을 매일 쓴다. 얼마 전까지 매일 발행했다. 요즘에는 발행 주기를 조절하긴 하지만, 글은 매일 쓴다. 종류도 다양하다. 전업 작가가 아닌 이의 특권이라고 할까? 에세이도 쓰고, 일기도 쓰고, 소설도 쓴다. 최근에 준비하고 있는 글도 있다.


  매일 쓰며 글이 흰 바탕이 빠르게 채울 때 쾌감이 있는 반면 커서와 눈싸움을 하는 일도 있다. 습관이 내 몸에 착 붙어 있어서 꾸역꾸역 쓴다. 보통 말이 안 되거나, 문장과 문장의 이음새가 어색하고, 단어는 거칠고 반복되기 일쑤다. 그래도 마음을 꾹 쥐어짜서 적어둔다.


 글은 마음을 쏟아내는 일 같다. 하고 나면, 텁텁하던 마음이 화해진다. 글이 말이 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글을 쓰는 일은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는 일이라 한다. 그래서일까? 글을 쓰다 보면, 치약을 짜는 일처럼 느껴진다. 내가 겪으며 느낀 일을 짜서 보여주기도 하고, 상상을 펼쳐 놓은 글을 쏟아내서 보여주기도 한다.


  글을 꾸준히 쓰는 일은 어렵다. 글감이 있어도, 써지지 않는 날이 있고, 진한 글감이 있어도 한 줄 나아가지 못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 하나는 꾹 짜면 무엇이라도 나온다. 얇아서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꾹 누르면 나온다. 억지로 나온 글이 훌륭할 수 있도, 아니면 이상할 수 있다. 그건 사실 의미 없다. 썼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퇴고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써놓은 글을 다듬는다. 깎아 내고, 붙이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뉴욕 헤럴드 트리뷴에서 기자로 시작해 작가이자 교수인 윌리엄 진서가 한 말이 떠오른다.


  "글쓰기가 단번에 완성되는 '생산품'이 아니라 점점 발전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글을 잘 쓸 수 없다."


  다듬다 보면,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글이 된다. 물론 아무리 다듬어도 세상에 내어 보이지 못하는 글도 있다. 글을 쓰는 시작은 우선 나를 짜내어 글을 써 놓는 일이다. 힘껏 누르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그 순간에도 글이 나온다.


  쥐어 짜낸 글은 치료제가 되고, 내가 원하는 삶으로 이끌어 가는 소망이 되기도 한다. 쥐어 짜냈다는 표현이 억지로 써낸 것처럼 보인다. 곰곰 생각해 보면, 글을 쓰는 일은 감정을 걷어내고, 이성으로 스스로를 보는 일이니 애초에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내가 우연한 기회로 글을 쓰고, 참 꾸준히 쓰고 있다. 매번 쥐어짜고 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글을 쓸 수 있는 가능성에 조금은 놀랍다.


  이제는 정말 나오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치약을 꺼냈다. 어머니가 양치를 하며 나를 부르신다. 아! 아마 그 얇은 치약 튜브에서 치약이 나온 모양이다. 우선 어머니가 부르신 소리를 모르는 척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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