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의 <Good & Great>
떨어진 자존감을 멱살 잡아 올리는 노래.
여자친구는 샤이니 팬이다. 멤버 모두를 좋아하지만, 특히 키(Key)에 깊은 팬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은 서로를 닮아 간다고 할까? 아니면, 강제로.. (읍읍!) 아니, 곁에 있으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발 끝부터 물들었다. 여자친구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앨범이 나오면, 나는 의식을 치른다.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3번 듣기 (여자친구가 두려워 듣게 된... 아닙니다!). 의식 뒤에는 꼭 한 곡이나 두 곡이 마음에 깊이 남는다. 이번에도 그랬다.
노래가 마음에 남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하지만, 보통 세 단계를 거쳐 마음에 새겨진다. 멜로디. 보통 차에서 노래를 듣다 보니, 처음에는 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집중해야 겨우 가사가 흐릿하게 들리게 되니, 우선 멜로디에 마음이 사로잡히게 된다. 몇 번을 연속해서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흥얼거리게 된다.
그런 다음에는 내가 쓰고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알고리즘에 새겨둔다. 차를 가장 타서 먼저 듣는 곡. 오프닝 곡이 된다. 예민한 알고리즘이 알아차리고는 나에게 자주 추천한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 보면, 가사가 궁금해진다. 이때가 마지막 단계로, 차에서 듣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가사를 찾게 된다. 가사를 찬찬히 살피고 나면, 어느새 내 마음 정원 노래 벽에 기록된다.
이번 키의 노래도 세 단계를 거치고 나서, 마음에 깊게 새겨졌다. 앨범 가장 앞에 있고, 타이틀 곡인 <Good & Great>. 해석을 해볼까? "좋아 그리고 멋져." 나르시시즘에 가까운 말일까? 가사가 담고 있는 그림은 달랐다. 등장인물은 자신의 삶을 겨우 이겨내는 연약한 사람이다.
각진 단어가 뾰족한 문장을 만들어 찌를 때가 있다. 직장에서 누군가 쏘아 박히기도 하고, 가까운 이들이 기습해 찍어내기도 한다. 피를 가장 많이 흘리는 녀석이 있는데, 바로 자존감이다. 화살이 등에 촘촘히 있고, 배에는 피가 흐르는 자존감은 주저앉아 있다. 그뿐일까? 나 자신이 예리하게 만든 칼이 앉아 있는 녀석에 일격을 가한다.
쓰러진 자존감을 부축하고, 힘든 몸을 깨워 우린 세상으로 간다. 혹시 회사에 문제가 생겨 출근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학교에 불이라도 난 건 아닐까?라는 주문을 외우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늘 벌어지지 않는다. 회사도, 가족도, 세상도 늘 우리에게 불규칙한 퍼즐을 주고, 겨우 맞추고 나서 고개를 들어 보면 길을 잃고 정글 한가운데 서서 막막하게 된다.
그 길이 내가 선택한 일이라도, 쉽지 않고,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간 곳이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이 잘못된다면 모두 내 탓 같다. 힘들다. 그럴 때, 피를 흘리는 자존감은 기침을 콜록거리다 이제는 '삐~' 소리와 함께 생명을 다할 정도가 되기 일쑤다. 그때, 필요한 주문이 바로 "좋아! 그리고 멋져."가 아닐까?
내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는 처음이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주문. 자신의 노고를 가장 먼저 알아차려야 하고, 가장 먼저 칭찬해 줄 사람은 다름 아닌 내가 아닐까? 내 등에 있는 화살을 뽑아내고, 배에서 흘러내리는 상처를 눌러 지혈을 한다. 그 시작이 바로 주문이다. "난 좋아 그리고 난 멋지다."라고 하는 일이다.
요즘 난 잊고 있었다. 아니 잃어버렸다. 키가 부른 노래 가사가 누워있는 내 자존감을 흔들어 깨운다. 상처에 붕대를 단단하게 감는다. 눈을 가늘게 뜨니, 흐릿한 누군가 멱살 잡아 흔들더니, 일으켜 세운다. 외친다. 잘 들리지 않던 소리가 삐 소리를 넘어 희미하게 들린다. "외쳐! 좋아! 넌 멋져! 마음이 힘든 날엔 선택받은 거라 또 믿어봐! 하루 종일 열댓 번을 외쳐봐! 좋아! 넌 멋져!"
어려운 퍼즐을 푸는 일의 시작도, 잃어버린 정글에서 길을 찾는 일도 모두 자존감이 일어나야 할 수 있다. 넘어진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는 일은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일부터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소리치는 일이다.
여자친구와 함께 탄 차에서 내가 주입한 알고리즘이 작동하더니, 키의 노래를 내어 놓는다. 난 조심스럽게 소리를 키워본다. 자라난 소리가 차를 가득 채우니, 눈이 번쩍 뜨인다. 멜로리에 몸을 맡기고, 마음속에서 낮게 읊조려 본다.
"좋아 그리고 멋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