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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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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Oct 13. 2023

튀김, 어머니에게 양보하지 마세요. 직접 하세요.

아직은 어머니 손을 빌립니다.

튀김, 어머니에게 양보하지 마세요. 직접 하세요.


  우리나라에는 긴 연휴가 두 개가 있다. 추석과 설날이다. 둘 중에 어떤 날이 좋을까? 학창 시절에는 설날이 좋았고, 지금은 압도적으로 추석이 좋다. 이유는 나이 탓이라고 할까? 어린 시절 한 살, 한 살 나이를 쌓아가는 일을 기대했다(물론 지금도 기대되지만, 너무 자주 돌아온다). 학교에서 탈출해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희망에 학창 시절에는 설날이 좋았다. 지금은? 나이를 쌓아가는 설날보다는 고소한 튀김 냄새가 코를 간질거리고, 따뜻한 소고기 뭇국이 기다리는 추석이 더 좋다.


  우리 집은 제사를 따로 지내지 않는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뜨거운 기름 앞에서 고생하신 어머니. 그녀는 해방되었다. 하지만, 가족을 위해 튀김을 여전히 하신다. 어머니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주방보조 자리를 부탁하고, 튀김을 할 때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다짐을 단단하게 했다.


  제사와 무관한 음식 준비는 마치 명절 오마카세 같다. 오징어 튀김, 새우튀김, 동그랑땡. 난립한 후보를 보며, 동생은 한마디 한다. "그렇게 먹고 싶은 게 많으면, 직접 하세요. 어머니에게 양보하시지 말고." 시크한 그녀의 목소리에 움찔하고, 과하다 생각되는 후보들을 걷어 들였다. 최종 당선된 이들의 명단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들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진 한 나는 돕겠노라고 호기롭게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내 능력을 눈으로 분석하듯 보시더니,  주방보조가 할 수 있는 일은 재료를 준비하는 일이 전부라고 한다. 기름은 위험하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타이밍의 예술이니 말이다.

  

재료준비


  동그랑땡을 만들기 위해 두부를 꽉 눌러 짜고, 명태포에 소금을 솔솔 뿌린다. 새우에 물기를 키친타월로 싹싹 닦아내고 어머니의 명령을 기다렸다. 주방 사령관은 덕분에 빨리 끝나겠다며, 부침가루와 밀가루를 준비하신다. 재료 준비 속도에 맞춰 프라이팬에는 구워질 아이들이 들어갈 자리가 마련되었다. 기름은 튀김을 받을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다.


  기름 튀는 소리는 비가 된다. 고소함이 비가 되어 내린다. 타탁 거리는 소리가 주방을 채우더니, 이제는 집 전체에 내린다. 어머니 홀로 섬처럼 계셨던 주방 곁에 있으니, 마음이 울렁거린다. 계속 내가 할 일이 없냐고 보채니, 이제는 곁에서 잘 보라고 한다. 주방 보조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며, 기다리라 하신다.

  

튀김과 구이.


  침을 꼴깍 넘기는 사이, 어머니는 간이 잘되었는지 굽지는 적당한지 알아보라는 명분으로 내 입에 오징어 튀김을 하나 넣어주신다. 난 엄지 손가락을 척하고 내 보이며, 좋다고 외쳤다. 커다란 소쿠리 왼쪽 위에서 노란색 튀김과 구이들이 채워진다. 기름으로 내리던 비가 그치고, 노란색 판이 가득 채워졌다.


  내가 도왔다는 뿌듯함 한 조각과 어머니의 마음 가득히 담긴 음식이라 그런 걸까? 다른 어떤 날 보다 고소한 음식이 가득한 소쿠리를 사진으로 찰칵 남겨둔다. 사진 찍은 내 뒤에서 어머니는 이제 치우자며 내 등을 토닥거리신다.


  달그락달그락. 어지러워 던 부엌이 예전처럼 깨끗하게 만들어진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약간 굽어진 어머니의 등, 염색을 밀어낸 흰머리가 보인다. 다시 한번 마음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시간을 돌아보는 일은 마음에 담긴 물을 참 많이 움직이게 한다. 이리저리.


  정리가 끝난 부엌이라는 섬에서 나서시는 어머니 등에 빼곡하게 적혀있는 흔적이 궁금해졌다. 등을 톡 하고 건드려 본다. 추석 맞이 옛이야기를 끌어내려 질문을 고민해 본다. 질문이라는 재료를 준비하고, 튀겨내어 소쿠리에 담아 둔다. 마음에 비가 내려 어머니의 옛 일들이 떠올랐다.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마음을 숨겨본다.


완성된 튀김.


  다른 말 보다 어머니에게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물론 아직 전하지는 못했다. 한동안 전하지 못하지 싶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오래도록 함께 튀김 비가 내리는 순간을 함께하고 싶어요.'



튀김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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