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기억을 불러 냅니다.
생활기록부 찾아보는 게 요즘 유행이라며?
유행을 잘 모른다. 나이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예전부터 그랬다. 인스타그램을 열정적으로 탐구하는 것도 아니고, 유튜브를 넓게 보는 것도 아니니, 유행은 저 멀리서 뒤통수를 보기만 했다. 아쉽냐는 질문에는 또 다른 유행이 지나갈 테니, 별 마음 없다는 답을 마음에 담고만 있었다.
유행을 더디게 아는 내가 최근 알게 된 유행이 바로 "생활기록부" 조회다. 예전에는 학교에 가서 발급을 받아야 된다고 들었는데, 이제는 전산화가 되어 정부 24를 통해 조회가 가능하다고 한다. 아쉽지만, 2003년 1월 이후 고등학교 졸업자부터 발급 가능합니다.
흐릿한 기억 속에 있던 내 고등학교 모습이 기록으로 차곡차곡 쌓여있는 파일을 열었다. 잊고 있던 담임 선생님의 이름이 있었고, 고등학교 때 경직된 모습의 사진이 보였다. 상을 받는 것도, 장난을 가득 담은 진로진도 상황의 진로 희망도 있다. 건조한 숫자 뒤에 싱그러웠던 기억이 뭉게뭉게 피어난다.
난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환경미화를 핑계로 친구들과 가까운 산으로 쓰레기를 줍던 생각이 떠오르고, 고등학교 내내 도서실을 관리하던 내 모습도 보였다. 컴퓨터실을 관리하겠다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택되어 친구들과 간단한 게임을 했던 시간도 훅 떠올랐다.
교과학습발달상황이라는 긴 이름에 아래에 성적과 등수와 함께 나온다. 생각보다 열심히 살았던 내가 흐릿하게 보인다. 이과생인 내가 국사, 한국 근현대사에서 1등을 하는 모습을 보니, 별난 구석이 보이기도 했다. 마지막에 다다르니 종합의견이라는 말로, 담임선생님의 짧은 문장이 남겨져 있다.
그래도 옮겨볼까?
1학년
학습태도 양호하며 교과성적도 우수할 뿐 아니라 활기차고 명랑한 생활태도가 바람직하여 칭찬할 만함.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가 명랑했군요. 거기다 엇나가지도 않았고요. 선생님 덕분입니다 *참고, 1학년 담임 선생님은 시인이자 에세이 작가인 국어 선생님이셨습니다.
2학년
근면하고 성실하게 매사에 임하여 동료의 신망이 높고 교과성적도 우수함. 학급서기로 최선을 다하며 학급일에 적극적으로 모범을 보임.
기억에는 선생님에게 장난을 많이 치던 아이였던 것 같은데, 따스하게 적어주셨군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 학급 일에 오지랖을 부리며 이런저런 일을 하라고 시키던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3학년
활달한 성격으로 학급 및 학교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성실한 자세로 매사 책임감이 강하고 성적도 우수함.
책임감이 있긴 있었나 봅니다. 힘든 입시 속에서도 저는 활달했군요. 다행입니다. 아마, 진로 지도를 진심을 다해해 주신 선생님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건조한 숫자와 짧은 단어가 떠올린 기억에 한동안 웃음이 배시시 나왔다. 담임 선생님이 적어둔 짧은 글에 감사한 마음이 피어났다. 기록이 떠올린 기억은 지금 이 순간 추억이 되어 자리를 잡았다. 한 장 인쇄해, 곁에 두어야겠다.
유행은 한 번 왔다 지나가는 가벼운 바람이라고 하나, 하는 이유가 있나 보다. 가끔은 유행에 몸을 맡겨도 좋겠다. 생활기록부 검색은 마음을 따스하고 묵직하게 다가온다. 오늘을 기록해 둔다. 먼 오지 않는 날을 상상해 본다. 지금 내가 적어둔 기록이 기억이 되어 추억으로 자리 잡게 될까?
여러분의 생활기록부를 조회해 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