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장면만 잘라 붙였으니까요.
책을 읽어보니, 가족이 참 행복해 보여요.
출간을 한지 시간이 지났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내 일상>. 운이 내 삶에 잠시 머물다 갔다고 할 정도다. 좋은 출판사 대표님을 만났고, 곁에 있는 이들이 모두 응원을 해줬다.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과정 자체가 새로웠다. 부캐라는 말이 유행을 듣기만 했지, 내가 부캐를 가질지 몰랐다.
본캐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부캐로 경험한다. 가장 강렬한 경험은 독자와의 대화(?)라고 할까? 책을 산 지인과 밥을 먹는 자리였다. 책은 사는 일로 임무를 다 했다고 주장하며, 읽지 않아도 된다고 부담을 덜어드린다. 간혹(?) 읽고 나서 몇 마디 하시는 분들에게는 정말 머리 정수리가 보일 때까지 허리를 숙여 인사를 드리고 싶다 (오프라인에서는 비슷하게는 합니다). 고맙다는 말을 연신하고 있으니, 소중한 독자께서 한마디 하셨다.
"책을 읽다 보니, 가족이 참 행복해 보여요."
받은 질문을 웃음으로 눙치며 접어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둔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행복할까? 매일이 행복하시다는 분이 있다면! 비결을 듣고 싶다. 데드풀이라는 영화의 대사가 빠르게 부유해 보였다 사라졌다. "인생이란 괴로움의 연속이고, 행복은 광고처럼 짧다 (Life is an endless series of train- wrecks with only brief, commercial- like breaks of happiness)." '행복'이라는 장면은 순간처럼 흘러가고, 대부분 지루하거나 괴로움이 사이사이에 끼여있는 영상이다. 평범하기 이를 때 없는 장면에서 즐거움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매 순간이 행복하진 않다.
가족도 비슷하다. 책에 담긴 우리 가족은 행복해 보인다. 늘 그럴까? 아니다. 가끔 동생이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하기도 하고, 마음이 뚱해 입을 조개처럼 꽉 물고 집 분위기를 흉흉하기 만들기도 한다. 시장에서도 모르는 사람들 간의 오가는 고성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고, 불쾌한 장면에 고개를 가로 젓기도 한다.
난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을 쓴 것일까? 아니다. 단연코. 따분한 삶과 고단한 생활 사이에 끼여있는 틈에 행복이 있다. 순간 지나갈 장면을 만나면, 짧게 벌어져 있는 사이가 난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누른다. 그래야 겨우 흘러가는 기쁨은 잡을 수 있다.
삶을 살아가는 일은 영상처럼 연속된다. 끊어지지 않는다. 내가 살아가니, 어느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다. 건너뛰는 기능은 없다. 흘러가는 일을 잊어야 앞으로 갈 수 있다. 아쉽다. 나쁜 일은 잊고, 좋은 일은 잃어버리고 만다. 추억은 희미하게 남아 "그때 좋았지."라는 문장으로 남을 뿐이다.
글을 쓴다는 사실은 이어지는 영상에서 몇 장면을 떼어내는 일이고, 틈을 잡아내는 작업이 된다. 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놓으면 마치 행복한 삶만 사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썩 나쁘지 않다. 그들의 오해가 좋은 장면을 진하게 남기는 일이 되고, 좋지 않은 일을 흐릿하게 한다.
지인과 밥을 다 먹고 나서 얼버무린 질문을 가지런히 펴 답을 했다.
"편집해 두니,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저도 몰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