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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Nov 10. 2023

거절의 모든 잘못이 내 탓은 아니더군요.

거절 다음에 올 단어는?

거절의 모든 잘못이 내 탓은 아니더군요.


  영어 공부를 핑계로 유튜브를 누를 때, 자주 보는 영상 묶음이 있다. 대학 졸업 연설이다. 대학이라는 매듭을 매고 세상으로 나가는 대학 졸업. 열정은 타오르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그 순간.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이 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에는 재미도 있고, 뜻도 담겨있다. 


  미국이라서 일까? 유머가 절반 이상이고, 메시지를 조금 양념으로 넣는다. 비율에 상관없다. 웃다 보면, 강렬한 양념만이 입에서 돌돌거리며 남는다. 이번에 선택된 영상의 연사는 로버트 드 니로다. 그가 선 곳은 뉴욕대학교 예술대 졸업식이다. 


  로버트 드니로를 아실까? 인생 영화라고 줄을 세우면 가장 앞에 있는 대부의 주연이고, 히트, 아이리시맨, 인턴까지. 선이 굵은 영화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아메리칸 허슬>이라는 영화에서는 단 5분만 나왔지만, 전체 영화를 압도하는 존재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미래의 배우, 감독, 프로듀서, 안무가, 작가 앞에서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우선 축하를 보낸다. 미국 대학은 입학보다 졸업이 어렵다고 하니, 힘든 과정을 거쳐 낸 그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다음이 충격적이다. 


  "그리고 이제 X 됐어요. (And you`re xxxxxx.)"

  "평생 동안 겪게 될 '거절의 문'이죠(A door to a lifetime of rejection)."


  이제는 거절의 문만 남았다고 한다. 영어를 공부한다는 핑계는 휙 날아가고 거절당한 기억이 열린다. 최근 면접을 봤다. 나를 보여주고, 그들에게 내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자리. 가슴이 두근거리고, 준비한 말들을 더듬거리며 하고 나오면 자존감은 쪼그려 앉아 낮은 곳을 보게 된다. 옛 기억도 부유하더니, 잠시 앉았다.


  대학원에 와서야 거절을 처음 당해봤다. 내가 쓴 글이 거절당했다. 바로 논문.  처음 거절의 문이 삐걱 열릴 때는 내 탓을 참 많이 했다. 청춘 조각을 넣고, 땀을 담은 글이 단박에 거절당하는 장면에서 아팠다. 어디를 잘못 썼는지, 주제를 잘못 잡은 건 아닌지 마음이 어둑해지더니, 비가 내리기도 했다. 


  다음 거절은 언제였을까? 다음도 내가 쓴 글이다. 글을 묶어 보냈지만, 여러 출판사에서 응답을 받지 못했다. 물론, 운이 좋아 책을 출간할 기회를 얻었다. 다음은 언제가 될까?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확실한 사실이 하나 있다. 언제든 거절당한다. 직장을 다니며, 거절은 가끔 당할 테고, 꿈을 좇는 글쓰기에서는 조금 더 자주 거절의 문이 열릴 테다.


  과연 내 탓이었을까? 거절의 모든 요소가? 변명과 합리화라는 분들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생각을 해보니,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아니, 그럴 수가 없다. 만약 모두 내 탓이라면,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과욕이고, 오만하다는 생각에 도착했다. 겨울이 와서 낙엽이 떨어진 일이 나무 탓이 아닌 것처럼, 모든 일에 다 내 탓은 아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강한 요인이 덮쳐 준비한 일들을 한 번에 쓸어가 빈 땅으로 만들기 일쑤다. 거절의 문도 마찬가지다. 그 문은 내가 당긴 게 아니라, 뒤편에서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요소들이 문을 열어젖힌다. 털썩 주저앉아 있던 자존감을 세워 두고, 다시 일어서 본다. 


  배우 로버트 드 니로는 거절의 문이 열린 뒤, 꼭 기억할 단어를 말해준다. "다음" 자신도 미래의 감독님에게 보여줄 이력서를 준비하고 거절 뒤에 있을 다음을 마음에 담고 있다고 한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다.  짧은 영상이 끝났다. 거절을 당한 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생겼다. 마음에 가볍다. 상쾌한 바람이 불어 닥치고 지나갔다. 시원하게 불어 가는 바람이 뺨을 스치고 가며, 말한다. 


  "자 그럼 다음!"



자 그럼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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