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arry Garden Jan 03. 2024

햄릿형 인간의 마음 대책 위원회를 여는 이유.

고민 자체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됩니다. 

햄릿형 인간의 마음 대책 위원회를 여는 이유.


  생각이 많다. 문제가 닥치면, 고민을 시작한다. 지도교수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넌 햄릿형 인간이야." 생각만 하다 끝나는 운명일까? 햄릿형 인간은 사색하며, 지각력과 통찰력에 의지한다. 있어 보이지만, 실천하는 힘이 1도 없어 자신의 변화도 세상의 변화에도 기여하지 못하는 이다. 나 같다. 걱정을 마주하게 되면 난 마음 위원회를 소집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 든다. 장소를 넘어선다. 문제에 따라 모집되는 분들도 약간 다르다. 이순신 장군님, 세종대왕, 태종, 플라톤, 공자.... 그분들의 살아온 역경을 보며 내가 받아 든 문제를 어떻게 보실까 상상을 하며 말을 내어 놓는다. 그분들이 남긴 말과 행동을 기초로 해 내 삶의 문제를 풀어내려 한다. 근거는? 대부분 없고 혼자만의 생각이라고 할까?


  주어진 건 없고,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며 결단을 해야 하는 이순신 장군님은 나에게 언제나 길이 있다고 일러주시는 것 같다. 뛰어난 학습능력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세종대왕께서는 깊게 사유하고 공부를 하라고 말씀하신다. 중국 전국을 주유하며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려 고난을 겪는 공자께서도 대책 위원으로 말씀을 남기신다. "지금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고 신념이 있다면 해야 한다."


  마음 대책 위원회 가장 끝자리에서 그분들의 말씀을 듣고, 그분들이 남긴 글을 읽으며 고민은 길어진다. 고심을 하고 있다 보면 그분들은 나를 기다리신다. 커다란 책상에 앉아 내가 불편하지 않게 고요를 붙잡아 두신다. 햄릿형 인간답게 고민을 깊게 가져간다.



  자고로 생각만 하는 이들은 보고서 만들기를 즐긴다. 걱정, 불안, 생각이 글로 만들어져 물성을 가진 것으로 변했다고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다는 착각 덕분이다. 박사과정을 거치며 많은 보고서를 쓰고 나서 알게 된 건, 보고서의 운명이다. 결국 아무도 읽지 않게 되는 단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마음 대책 위원회에서 만들어진 보고서도 다르지 않다.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 햄릿형 인간으로 변명을 해보자면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행동을 하지 않지만, 생각을 정리해 둔 것만으로도 말이다. 가득 찬 보고서를 마음에 두고 있다 보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을 만난다.


  가끔 내 지인들의 고민을 듣는다. "대학원을 가야 할까요?" "취직은 해야 할까요?" "어떤 전공이 좋을까요?" "꿈이 인생에 중요할까요?"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가능할까요?" 사람 사는 일이란 게 특별해 보이지만, 아래에 가보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내 마음 대책 위원회에서 나눈 이야기와 비슷하다. 


  그럼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듣는 와중에 지난 마음 대책 위원회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찾는다. 햄릿형 인간답게, 그들의 질문에 대한 나만의 보고서가 있다. 보통 말을 하는 일만으로도 그들은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이 말을 하며 답을 찾는 경우가 잦다. 가끔 그렇지 못할 때, 내 의견이 궁금하다고 할 때. 난 보고서를 보여준다.


  보고서의 존재만으로도, 그러한 고민을 한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단단해 보이는 이가 햄릿처럼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보통은 많은 위로가 된다. 아무도 찾지 않는 보고서이지만, 마음의 기록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누군가의 위로가 됨을 알게 된다. 


 햄릿형 인간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닐지 않을까? 그래도 새해이니 생각만 하지 말고, 무엇이라도 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으면 좋고 안 좋으면 안 좋은 거지 괜찮은 건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