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하면 뭐가 되긴 될까?
불안은 30대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
언제부터 일까? 불안이 조금씩 커지던 때가? 이제는 법이 바뀌어 만 나이도 없어져, 어떤 수를 쓰더라도 30대 중반이라는 이름표를 피할 수 없다. 30대가 되어 글을 쓰고, 짧은 일들만 연속적으로 하니, 불안이 싹텄다. 다행히 내 주변에는 날 압박하는 이가 없다. 내가 나를 누르고 있으면, 오히려 곁에 있는 이들이 와서 그러지 말라고 나를 다독인다.
나만 그럴 걸까? 지금은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가지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유해진이 했던 이야기가 눈에 쏙 들어왔다.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극단에 들어갔고, 활동을 했다. 참 어려웠던 삶을 유쾌하게 말한다. 그렇게 십 년 20대 후반에 들어선 그는 빛이 보이지 않았다 한다.
다시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30대 중반. 지금 내가 서있는 여기에 도착해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제 빛이 보일만 한데 여전히 길이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불안은 30대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
20대는 젊다는 이유로 온갖 시도를 해도, 실패를 해도 기회가 오리라 생각한다. 아니 믿는다. 거기다 나만 힘든 것도 아니니, 친구들과 으쌰으쌰 하며 다시 도전하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함께 시작한 이들은 다른 길로 들어서 뿌리를 박고 성장하지만, 난 여전히 시도와 실패를 반복한다.
이제는 더 넣을 것도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젊다는 패기에 숨어 이룩한 게 없는 변명도 구차하게 되는 날이 온다. 그 시간이 바로 30대 중반인 듯하다. 유해진은 혼자 다짐했다 한다. 30대 중반을 지나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다른 일을 하겠노라. 마법과 같이 37살부터 아주 작은 빛이 보였다 한다. 빛을 따라 걷다 보니 지금에 왔다.
그의 성공을 보면 내가 다 뿌듯하다. 어려운 순간을 넘어 여기까지 온 이에 대한 존경도 있다. 끝까지 하면 된다는 표상으로 보인다. 여기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끝까지 하면 무엇이라도 되는 걸까? 끝까지라고 생각하는 시점까지 하더라도 아무것도 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끝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내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지 않을까?"
우린 보통 성공한 이들에게만 눈과 귀를 내어준다. 실패한 이들, 끝까지 노력했지만 성공에 이르지 못한 이들의 흔적을 찾지도 못한다. 아니면, 끝까지 노력하면 모두 무언갈 이룩하는 것일까? 물론 성공이라고 하는 기준도 애매하다. 모두 각자만의 기준이 있을 테니 선뜻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성공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사는 일이 해결되어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생길 때'정도는 아닐까?
난 이제 30대 중반이다. 이룩해 놓은 건 없다. 좋아하는 일만을 꽉 잡고 버텨내고 있다. 곧 이 버팀의 힘이 다해 잠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다만 불안과 고민을 쌓는 노력을 하련다. 끝까지 하면 무엇이 되는지는 시간이 흘러야만 증명이 된다. 시간이 충분히 흐르고 내가 내 삶을 평가하는 날이 온다면. 스스로 나에게 말하고 싶다.
"이렇게 둘러보니, 내 삶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꽤 괜찮았어."